방글라데시 과도정부를 이끌 수장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84)가 낙점됐다. 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그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 대출제도 ‘마이크로 크레딧’의 창시자로 꼽힌다. 유누스는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남긴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고질적인 경제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
‘가난한 이들의 은행가’에서 정국 책임질 지도자로
AP통신과 현지 매체 데일리스타 등에 따르면 7일(현지 시간) 새벽 방글라데시 대통령 대변인은 모함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이 군부, 반정부 시위 주도 대학생 지도자, 시민단체 대표들과 회의를 열어 유누스를 최고 고문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과도정부는 새로 실시할 총선 준비와 진행을 맡는다. 과도정부의 다른 구성원들은 정당 및 이해관계자들과 논의 후 곧 결정될 예정이다.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되기 전인 5일, 유누스는 프랑스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면서도 “지금이 국가 비상사태이고 다른 모든 대안이 소용없어졌다고 한다면 (과도)정부를 이끌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024 파리 올림픽서 올림픽위원회 고문으로 파리에 머물고 있다. 이후 과도정부 참여를 수락한 그는 영국 BBC방송에 “그렇게나 많이 희생된 학생들이, 어려운 시기에 개입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나”고 전했다.
유누스는 1983년 빈곤층에게 담보 없이 소액 대출을 제공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해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남부 치타공 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던 그가 새로운 은행을 만들게 된 계기는 1974년 방글라데시를 덮친 대기근이다. 이때 사채업자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노예 노동’에 내몰린 이들을 접한다. 이후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통해 대출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신용만으로 소액을 대출하는 ‘마이크로 크레딧’을 탄생시켰다.
그라민 은행은 농촌의 저소득층과 특히 저소득층 여성의 경제적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통신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손을 얹는다”며 유누스에 대한 현지 민심을 설명했다.
전 총리와 오랜 갈등… 정치 경험 전무
유누스는 이번 소요 사태로 물러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77)와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다. 하시나 전 총리가 과거 그를 “가난한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다(blood sucker)”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을 정도다. 유누스는 2007년 ‘시민의 힘’이라는 정당 설립 계획을 밝히며 정치에 참여하려 했으나 소송에 휘말려 실행하지 못했다. 2011년에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그라민 은행에서 강제로 해임됐다. 유누스는 이코노미스트지 기고에서 자신에게 190건 이상의 법적 소송이 제기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3월에도 200만 달러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누스는 신병 치료 등을 마친 뒤 곧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할 예정이다.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유누스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하지 않다. 5주간 방글라데시 전역을 휩쓴 시위로 1만 명 이상이 체포됐고 사망자는 25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현지 싱크탱크 정책대화센터의 파흐미다 카툰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평화를 회복하고, 폭력과 기물 파손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과도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그에게 정치적 안정 회복만큼이나 경제난 해결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방글라데시는 최근 몇 년간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외환보유고 감소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유누스에게 갖는 존경심은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오리건대 인류학 교수인 라미아 카림은 WSJ에 “경제 안정의 출발점은 법질서를 회복하고 사법을 정치에서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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