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우리 재일동포한테 설, 추석보다 큰 명절이에요. 오랜만에 이웃들도 만나고, 너무 좋네요.”
15일 오전 일본 도쿄 이타바시구립 문화회관. 대강당에 들어가는 사람이 작은 태극기가 들어있는 파란색 가방을 하나씩 받아 들었다. 일본 최대 동포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주최한 제79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전에 참석하는 동포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정쟁으로 갈라져 광복절마저 정부와 광복회, 야당이 따로따로 개최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동포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즐기는 축제의 날이었다. 34년째 일본에서 거주 중인 최숙자 씨(51)는 남편도 재일교포다. 최 씨는 “한국에서 광복절에 정치권이 싸운다는 뉴스를 봤다. 일본에 해방된 기쁜 날마저 굳이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회관 인근에는 경찰들이 군데군데 배치됐다. 다행히 우익 세력이나 헤이트스피치(증오 발언)를 쏟아내는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한 60대 동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라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꺼려질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같은 데서 혐한 발언을 하는 건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행사장 앞에서는 파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태극기와 사은품을 나눠줬다. 도쿄한국학교에 재학 중인 고2 여학생들이었다. “학교에서 봉사활동 왔어요. 서로 오겠다고 신청해 경쟁률이 치열했는데, 운 좋게 뽑혔어요.”
이날 한국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25명. 전날 무대장비 설치는 남학생들이 맡았다고 한다. 무더운 공휴일에 행사에 와서 힘들지 않냐는 말에 학생들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내년엔 고3이니 못하잖아요. 친구들이랑 같이 하니 재밌고 좋아요.”
이날 행사장에는 1000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자리를 메웠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윤석열 대통령 경축사를 대독하고 김이중 민단중앙본부 단장 등이 광복절 경축사를 했다. 행사장 좌석은 민단의 지역 지부 별로 좌석이 배정됐다. 동포들은 행사 중간중간에 눈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눴다.
행사장 밖 로비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동포들끼리 한국어, 일본어를 뒤섞으며 인사를 나누느라 시골 장터처럼 왁자지껄했다. “신주쿠에서 새로 개업한 고깃집은 잘 되나요?” “요즘 남편 사업 매출이 줄어 고민이 커요.” “그 집 애는 이번에 한국으로 대학 갔다더니 적응은 잘 해요?” “날씨 선선해지면 소주 한 잔 합시다.”
로비 한 쪽에서는 초등학생 어린이 3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노래 연습에 한창이었다. 한국학교에서 매주 토요일 우리말을 하는 어린이토요학교의 합창단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몇몇 엄마들은 태극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기특한지 연습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었다.
1부 기념식이 끝나자 2부 축하공연이 열렸다. 초대가수 태진아가 첫 곡으로 ‘동반자’를 불렀다. 동포들은 함성을 지르며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라 부산했다. “동포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몇몇 동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췄다. 재일교포들에게 광복절은 정치와 무관한 잔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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