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총사령관 “7층 피신” 전화에 숨져…이스라엘 해킹으로 추정

  • 뉴스1
  • 입력 2024년 8월 19일 15시 54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총사령관 푸아드 슈크르가 지난달 30일 수도 베이루트에서 살해되기 직전 받은 ‘한 통의 전화’가 그의 운명을 가른 것으로 드러났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헤즈볼라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슈크르가 사망 당일 “아파트 7층으로 피신하라”는 전화를 받았으며 이는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 내부 통신망을 해킹한 결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WSJ에 당시 아파트 2층에 있던 슈크르가 7층으로 대피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이후 이스라엘군이 4~6층을 폭격해 슈크르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고층 건물이 없는 베이루트에서 표적이 되기 쉬운 7층으로 유인한 전화는 헤즈볼라의 내부 통신망을 뚫은 이스라엘군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슈크르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1982년 베이루트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아 시아파 게릴라 전투원들을 모집해 지금의 헤즈볼라를 조직하는 데 일조했다. 1983년에는 베이루트에 주둔한 미 해병대 막사에 폭탄테러를 벌여 미군 장병 241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미국 국무부의 수배 명단에 올랐다.

1985년에는 헤즈볼라의 총사령관으로 공식 임명됐고 그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미 항공사 TWA 847편의 납치를 기획한 것으로 지목됐다. 항공기를 장악한 시아파 무장세력은 미국을 상대로 이스라엘에 억류된 시아파 전사 700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하고 나서야 승객들을 풀어줬다.

헤즈볼라는 TWA 납치 사건과 자신들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슈크르는 사건 직후 돌연 잠적해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이어왔다. 자신의 측근들과만 교류를 했고, 올해 초 이스라엘과 교전 도중 전사한 조카의 장례식도 단 몇분만 참석했다.

슈크르가 거주한 아파트 주민들도 그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본적은 없었다며 그를 ‘유령’이라고 불렀다. 언론 노출도 없었던 탓에 슈크르의 피살 소식을 처음 보도한 레바논 언론들은 그의 초상으로 엉뚱한 남성의 사진을 썼을 정도다.

지난달 30일 이스라엘군은 슈크르를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라고 소개하며 베이루트 표적 공습으로 그를 제거했다고 인정했다. 앞서 헤즈볼라는 지난달 27일 이스라엘 점령지 골란고원의 한 축구장을 로켓으로 공습해 미성년자 12명을 숨지게 했는데, 이스라엘군이 사흘 만에 보복을 단행한 셈이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하마스 지지를 표명하며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과 산발적인 포격전을 주고받아 왔다.

이날 WSJ과 접촉한 헤즈볼라 관계자에 따르면, 나스랄라는 가자전쟁으로 이스라엘과의 긴장이 고조되자 지난 2월 자신의 대원들에게 보안을 이유로 스마트폰을 폐기할 것을 주문했고, 내부 통신망에서도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했다.

슈크르도 골란고원 축구장 피격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대원 암살 작전을 벌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슈크르 본인은 무심코 받은 도청 전화에 목숨을 잃었다.

슈크르의 시신은 인근 건물로 떨어져 그가 정확히 몇층에서 죽음을 맞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헤즈볼라 관계자들은 WSJ에 그가 7층으로 피신하라는 해킹 전화를 굳게 믿고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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