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나이티드센터.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뛰었던 미 프로농구(NBA) 팀 시카고 불스의 안방구장으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19~22일 열리는 곳이다.
이날 유나이티드센터 일대는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와 J D 밴스 부통령 후보를 “괴상하다(weird)”고 표현한 것을 빗대 ‘도널드와 J D는 괴상하다’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흔드는 사람도 많았다. ‘해리스’와 ‘월즈’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이들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민주당 지지자 도밍고 갈도스 씨는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에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왔다. 그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던 한 민주당 지지자는 손을 흔들며 “해리스와 월즈가 승리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도발’도 있었다. NBC 등에 따르면 18일 밤 DNC는 트럼프 후보 소유인 시카고 ‘트럼프 타워’ 외벽에 ‘트럼프-밴스는 지옥처럼 괴상하다(weird as hell)’ ‘해리스와 월즈가 당신을 위해 싸운다’ 등의 문구를 영어와 스페인어로 번갈아 투사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많은 지지를 받아왔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의 전당대회를 통해 지지층 결집과 컨벤션 효과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인사’들이 모두 시카고 전당대회를 찾고 분위기를 북돋을 예정이다.
시카고시 당국은 이번 전당대회 기간 중 민주당 대의원과 지지자, 취재진 등 약 5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시카고 도심의 미시간로 등에는 “이스라엘 지원을 중단하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들도 많다. 이들은 전당대회 중 대규모 시위를 계획 중이라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민주당은 18일 새로운 정강정책을 발표하며 “소중한 동맹 한국과 함께 북한의 위협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후보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대해 비판하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리스, 민주당 93년 텃밭서 출정식…곳곳 “트럼프 괴상해” 팻말
1931년 이후 민주당 소속 시장 당선 클린턴도 재선때 시카고서 全大 개최 민주당, 컨벤션 효과로 경합지 공략 親팔레스타인 단체, 대규모 시위 채비
‘미국 중서부의 수도’로 불리는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와 함께 미 3대 도시로 꼽힌다. 특히 민주당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1931년 이후 93년간 민주당 소속 시장만 배출했고, 1988년 대선 이후 36년간 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최근 시카고 시장을 지낸 민주당 유력 인사로는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고, 현재는 주일 미국대사인 람 이매뉴얼이 꼽힌다.
이런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여는 것은 지난달 21일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대선 후보직을 승계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과 지지층의 단합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른바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뜻이다.
● 정치적 텃밭이며 흑인 유권자 많아 ‘컨벤션 효과’ 기대
시카고는 민주당이 배출한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하와이주에서 태어났지만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에서 상원의원을 지냈다. 남편 못지 않게 인기가 높은 미셸 오바마 여사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시카고대병원 행정부원장을 지냈다. 부부가 만난 곳 역시 시카고의 법률회사다.
‘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 ‘두 번째 비(非)백인 대통령’을 꿈꾸는 해리스 부통령에게도 의미가 클 수밖에 없는 장소인 것. 약 270만 명인 시카고 인구의 29% 정도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흑인이란 것 역시 해리스 부통령에게는 특별한 부분이다.
실제로 전당대회 장소 유나이티드센터 일대에는 ‘해리스 지지’ 메시지를 담은 손팻말과 셔츠를 입은 흑인 유권자가 많았다. 모두 밝은 표정으로 “해리스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와 J D 밴스 부통령 후보를 겨냥해 ‘도널드와 J D는 괴상해’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흑인 민주당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해리스에게 투표하라”고 말했다.
● 인근 경합주 공략 위한 전략지
인근 미시간주, 위스콘신주가 이번 대선의 주요 경합주인 점도 시카고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인다. 두 곳은 과거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블루월(Blue Wall·민주당 장벽)’로 불렸지만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가 이긴 후 경합주로 바뀌었다. 양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1996년 대선 때도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승리 기억’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국민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다. 민주당 출신 전현직 대통령과 유명 인사도 대거 출격한다. 대회 첫날인 19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이 연설한다. 20일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 21일에는 월즈 부통령 후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나선다. 마지막 날인 22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갖고 집권 청사진을 공개한다.
● 민주당, ‘트럼프 타워’에 레이저 공격
다만 이번 전당대회를 주관하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18일 시카고 도심 ‘트럼프 타워’에 레이저를 쐈다는 NBC 보도 등을 둘러싼 논란도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도의를 벗어났다” “트럼프 측이 DNC에 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DNC는 ‘트럼프-밴스는 지옥처럼 괴상하다(weird as hell)’ ‘해리스와 월즈가 당신을 위해 싸운다’ 등의 문구를 영어와 스페인어로 투사했다. 또 이날 투사된 문구 중에는 ‘프로젝트 2025’도 있다.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트럼프 후보의 재집권에 대비한 각종 역점 사업을 정리한 문건으로 낙태권 반대 등이 담겼다. 민주당 측은 대선 기간 내내 ‘프로젝트 2025’를 트럼프 후보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 반면 트럼프 측은 “대선 캠프와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반박해 왔다. 2009년 완공된 트럼프 타워는 92층이며 트럼프 일가의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5성급인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고급 레스토랑 등이 입점해 있다.
전당대회 기간 중 친팔레스타인 성향의 200여개 단체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며 매일 대규모 시위를 갖기로 했다. 시내에는 경찰이 투입돼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 상당수 상점은 출입문과 유리창을 널빤지로 막는 등 시위대와 경찰의 유혈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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