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미국 대선]
트럼프 “달러 안쓰면 100% 보복 관세”
해리스 “AI경쟁 승리자는 中 아닌 美”
美中 사이 韓기업 전방위 압박 예고
“달러를 떠난 나라는 미국과 거래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 등을 쓰는 국가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7일(현지 시간) 대선 격전지 위스콘신주 유세에서 미중 무역전을 ‘기축통화’ 패권전으로 확전하고, 중국 편에 선 국가에 보복 관세로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미국 대선전이 과열될수록 각 후보들의 미중 무역전쟁 ‘시즌 2’ 구상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에 적극 대응해 온 중국도 보복 카드를 꺼낼 수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미중 갈등에 끼여 전방위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대중국 첨단 산업 견제를 시사해 왔다. 지난달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중국이 아닌 미국이 21세기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할 것”이라며 “인공지능(AI), 우주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고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0일 양 후보의 첫 대선 TV토론에서 대중국 정책 기조가 더욱 선명하게 공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양측의 대중국 정책 강경 기조에 따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이 고래 싸움 속 ‘새우 등’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뿐 아니라 중국과 위안화 무역 시스템을 논의해 온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과의 협력도 미국 규제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에 주요 생산라인과 시장을 두고 있는 반도체 업계의 리스크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리스-트럼프 中규제 압박, 韓반도체 먹거리 HBM 타격 우려
[‘미중 무역전쟁 시즌2’ 새우등 한국] 美대선 누가 되든 ‘무역전쟁 시즌2’ 美,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 통제… 삼성전자 핵심기술도 대상에 포함 SK 中공장 규제 다시 강화 가능성… 달러-위안 ‘환율전쟁’ 불똥 튈수도
“중국을 겨냥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추가 규제가 나오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최근 미국 금융사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한국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분석 보고서를 내고 이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한국 메모리 산업은 AI 산업 성장 덕을 봤지만 미중 무역전이 격화된다면 대중국 반도체 수출 축소 등 산업 전반이 얼어붙는 위협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였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대중국 강경 기조를 시사하자 한국 기업들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관세, 환율부터 대중국 투자, 반도체 수출까지 한국 경제 전반이 영향권에 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수출에서 20%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미국의 대중국 규제 핵심 품목이라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대중국 규제는 강화되고,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해 규제에 동참하라는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삼성·SK 中공장에 이어 HBM도 사정권
8일 산업계에 따르면 미 정부는 현재 중국 반도체 산업을 이전보다 강력하게 옥죄기 위한 규제 카드를 준비하며 이를 단계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5일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양자컴퓨팅, 최신 반도체 등과 관련한 첨단 기술의 수출 통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가 3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쓰는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도 포함됐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미세 공정의 핵심인 GAA는 삼성전자가 2022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기술이다.
한국 반도체의 새 먹을거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출 통제 가능성도 최근 부상하고 있다. BIS는 앞서 GAA와 함께 HBM도 규제 대상으로 검토해 왔다. 전체 글로벌 D램 시장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에서 올해 21%, 내년에는 3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90% 이상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모두 최첨단 반도체 기술로 아직까지는 중국 시장 비중이 크진 않지만 글로벌 반도체 최대 수요처인 중국에서 신시장 발굴이 어려워지는 만큼 기업들의 성장성을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SK의 중국 현지 반도체 공장 불확실성도 크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 법안인 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중국 증산량에 대한 규제를 걸었다. 지난해 한미 정부 합의를 통해 10년간 생산능력을 최대 5% 늘릴 수 있도록 규제 유예를 받았지만 언제든 다시 통제가 강화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 동맹국도 못 피하는 대중국 규제
미중 무역전이 격화될수록 “규제에 동참하라”는 동맹에 대한 압박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7일 네덜란드는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2종의 수출을 직접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첨단 장비뿐 아니라 구형 반도체 장비까지 수출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그간 “ASML은 경제에 중요한 기업”이라며 통제 강화를 고심해 왔다.
기업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앞서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최고경영자(CEO)는 대중 규제에 대해 “갈수록 안보 때문이라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미국의) 경제적 이유가 더 큰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전략에 적극 동참한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반도체 칩 사업의 거의 100%를 빼앗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도 향후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비롯해 중국에 대한 투자 및 협력에 대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실제로 달러-위안화 패권전이 가속화되면 한국이 위안화 중심의 수출 시장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기축통화인 달러 수요가 확대되면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해 수입 물가가 급등하는 등 한국 경제에도 파장이 미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미국 대중 규제 동참은 궁극적으로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기할 건 포기하더라도 ‘규제 유예’ 등 실리를 취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당장 HBM 등 한국이 특화한 반도체가 타깃이 되면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의 규제 절충점을 모색하는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한국은 오히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 공정에 투자를 집중해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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