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표 국립대인 도쿄대가 20년 만에 등록금을 20%(100만 원가량) 인상하기로 했다. 도쿄대가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건 2005년 이후 동결돼 온 현행 등록금으로는 국제적인 수준의 교육 환경을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등록금 인상은 내년 신입생부터 적용된다.
한국 대학들이 16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교육과 연구에 적극적인 투자를 못해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처럼 도쿄대 역시 비슷한 고민 속에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대 등록금 인상에 맞춰 일본의 다른 국립대들도 등록금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하고 있는 일본 사립대들은 그동안 꾸준히 등록금을 인상하며 교육 여건을 개선해 왔다.
● “글로벌화 대응 위해 수업료 인상”
11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후지이 데루오(藤井輝夫) 도쿄대 총장은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53만5800엔(약 508만 원)인 등록금을 64만2960엔(609만 원)으로 20%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등록금 인상은 이달 중 학내 회의에서 정식 결정될 예정이다.
후지이 총장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결정했다”며 “고등교육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교육 학습 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국립대는 과거 2~3년 단위로 등록금을 꾸준히 올려 왔다. 하지만 도쿄대를 비롯한 국립대가 2004년 일제히 법인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법인화로 등록금이 대폭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거세지자, 당시 일본 정부는 “표준액의 10%까지만 올릴 수 있게 하겠다”며 상향 한도를 설정한 것. 문부과학성은 2005년 국립대 등록금 기준인 표준액을 53만5800엔으로 책정한 뒤 20년간 건드리지 않았고 등록금은 자연스럽게 동결됐다.
2019년 일본 정부가 인상 가능 폭을 표준액 대비 20%로 넓히면서 규제를 완화했고 도쿄공업대, 지바대 등 다른 국립대가 소폭 등록금을 인상했다. 그러나 대표 국립대인 도쿄대는 등록금을 올리지 않았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 여파로 등록금 부담을 키울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교육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물가도 오르면서 등록금을 묶어 두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후지이 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교육 환경 정비를 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지금 인상하지 않으면 투자도 어렵다”고 말했다.
● 정부 교부금과 기부금은 한계
도쿄대 수입의 3대 축은 등록금, 기부금, 정부 교부금이다. 이 중 정부 교부금은 지난해 847억 엔(약 8020억 원)으로 20년 전보다 80억 엔(약 757억 원) 줄었다. 등록금은 20년간 동결되면서 전체 수입에서 수업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그치고 있다.
세계적 명문대인 도쿄대는 다양한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여러 곳에서 기부금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정적 재정 운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위탁연구 수입 등은 사용 용도에 제한이 많다”며 “수입의 40%가 독자 기금 운용 이익인 하버드대와 비교하면 일본 대학은 외부 자금 유치에 약하다”고 진단했다.
도쿄대는 이번 인상으로 2028년에 13억5000만 엔(약 128억 원)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대학 운영에 큰 도움이 될 수준은 아니다. 다만 재정의 기본이 되는 등록금 수입이 늘어나 운용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대는 늘어나는 등록금 수입을 도서관 강화, 학생들의 글로벌 체험 확대 등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등록금 인상에 대한 학생들은 불만이 크다. 도쿄대의 한 재학생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 “등록금을 올리면 빈부에 따른 교육 격차가 확대되고 아르바이트로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도쿄대는 등록금 전액 면제 대상을 연 수입 400만 엔 이하 가구 학부생에서 연 수입 600만 엔 이하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넓힐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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