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체코는 원자력 발전소 외에도 고속철, 고속도로,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양자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가 큰 나라입니다.”
이반 얀차렉 주한국 체코대사가 13일 서울 종로구 주한체코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한국이 수주한 체코 두코바니 원전이 양국의 협력에 중대한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은 체코가 2036년 가동을 목표로 남부 두코바니에 지을 7, 8번째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7월 선정됐다. 내년 초 최종 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마무리 짓기 위해 19~21일 체코를 국빈 방문한다. 얀차렉 대사는 “체코 현지에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원전 드라이브를 거는 점을 뜻깊게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약속 또한 신뢰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맞대결이었던 이번 수주전에서 체코는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까운 프랑스가 유력하다는 일각의 관측을 뒤엎은 결정이었다. 얀차렉 대사는 “정치적 계산을 깔지 않고 공정한 심사 끝에 한국을 선택했다”며 “한국이 내건 공사 기한 엄수와 낮은 예산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체코는 현재도 원전 6기를 운영해 전력을 공급한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행(2022년 기준) 37%에서 2050년 50%로 끌어올리기 위해 추가로 최대 4기를 지을 계획이다. 체코는 유럽의 전통적인 공업 강국이기도 하다. 단어 ‘로봇’도 체코어가 어원이다. 대표 수출품은 자동차, 현미경, 반도체 등이다. 현대자동차(2006년)와 넥센타이어(2014년)도 유럽공장을 체코에 냈다.
얀차렉 대사는 “체코가 한국의 유럽 원전 시장 진출에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며 “기술력을 갖춘 한국과 원전을 지어봤고 유럽 시장 이해도가 높은 체코가 협력한다는 소식에 이웃 국가들이 큰 관심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체코는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했다.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 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체코 정부는 지리적 이점을 살리기 위해 향후 10년간 고속철도과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얀차렉 대사는 “한국은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는 물론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퀀텀 기술 등 체코의 전략 성장 분야 전반에서 협력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양국은 국방 분야에서 협력도 꾀할 계획이다. 12일 다니엘 블라즈코벡 체코 국방부 차관은 서울안보대화를 계기로 방한해 한국 국방부와 만났다. 양측은 내년 1분기(1~3월)에 공동위원회를 개최해 안보 및 방산 협력 심화를 위한 토대를 닦기로 했다. 토마쉬 포야르 체코 국가안보보좌관(3~6일)과 얀 리파브스키 외교장관(8~10일)에 이어 이달 들어 세 번째 고위급 한국 방문이다.
체코와 한국은 내년에 수교 35주년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10주년을 맞이한다. 페트르 피알라 총리의 한국 방문도 점쳐진다. 두코바니 원전 수주까지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양국 관계에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얀차렉 대사는 이달로 한국 부임 1주년을 맞았다. 김치가 입에 잘 맞고 반려견과 새벽 남산 산책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각계 초대로 한국을 빠르게 알아가고 있다며 한국인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얀차렉 대사는 “직전에 근무하던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는 체코 식당이 아예 없었지만 서울에는 7곳이나 있다”며 “양국의 끈끈한 교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유럽 대사가 그렇듯 북한 대사를 겸하지만 체코의 북한 대사관 재가동은 아직이다. 얀차렉 대사는 “조만간 재가동되기를 희망한다”며 “체코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지지해 왔고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 목소리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주 4회 운항하는 양국 직항편을 주 7회로 증편하는 것 또한 목표다. 한-체코 민간 교류를 활성화에 지렛대가 될 전망이다. 얀차렉 대사는 체코가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를 목적으로 살기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인근 유럽 국가로 이동이 편리하고, 수도 프라하는 거주자 4명 중 1명이 외국인일 정도로 많아 영어가 잘 통한다고 한다. 그는 청년 세대가 양국 관계에 중요한 뼈대가 된다며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한국의 젊은 분들을 위해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2005년)’을 이을 새로운 작품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체코 영화 산업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습니다. 문을 두드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얀차렉 대사는 “체코인은 유머를 좋아한다”며 풍자 소설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를 추천했다. 기자 출신 작가 야로슬라프 하셰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반전(反戰)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엉뚱한 성격의 주인공 슈베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겪은 각종 일화가 총 3부작의 소설에 담겼다. 특히 저자의 재치가 돋보이는 삽화 170여 점이 수록돼 재미를 더한다. 출간 이후 54개국에서 번역됐고 독일의 세계적인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 작품을 연극으로도 각색했다. 체코 문화부의 번역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는 지난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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