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1명 사망, 2800여 명 부상”
헤즈볼라, 배후로 이스라엘 지목 “처벌 있을 것”
NYT “삐삐에 폭발물 내장, ‘삐’ 메시지에 작동”
17일(현지 시간) 레바논 전역에서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주로 쓰는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11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쳤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호출기에 심어진 폭발물이 원격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및 기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경 헤즈볼라 지도부가 보낸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가 호출기에 전송된 지 얼마 안 돼 ‘삐’ 소리가 나면서 레바논 전역에서 호출기가 동시 폭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이 폭발로 최소 11명이 사망하고 28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국영 언론에 밝혔다. 헤즈볼라는 이 폭발로 최소 8명의 전투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폭발 전 바지 주머니에서 연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및 기타 관계자들은 이번 작전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이들은 헤즈볼라가 대만의 골드아폴로사(社)로부터 주문한 호출기가 레바논에 도착하기 전 이스라엘이 폭발물을 심는 조작을 했다고 NYT에 전했다. 이스라엘 측은 이번 폭발과 배후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폭발물은 호출기 배터리 옆에 이식돼 있었으며, 폭발물 무게는 1~2온스(28.3~56.7g)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물을 폭발시키기 위해 원격으로 작동하는 스위치도 내장돼 있었다. 폭발하기 몇 초 전 ‘삐’ 소리가 나도록 프로그래밍도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폭발의 강도와 속도를 고려하면 이번 폭발이 일종의 폭발물로 인해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소프트웨어 회사 위드시쿠어의 전문가이자 유로폴의 사이버범죄 고문인 미코 히포넨은 “이 호출기는 이런 종류의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폭발의 크기와 강도를 보면 배터리만 폭발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텔아비브대 사이버보안 분석가이자 연구원인 케렌 엘라자리는 NYT에 “이번 공격은 헤즈볼라가 가장 취약한 곳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했다.
헤즈볼라는 도청을 우려해 수년간 대원들에게 무선호출기 사용을 지시해왔다. 특히 엘라자리 연구원은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올 초 휴대전화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호출기가 이들 내부에서 주요 통신수단이 됐다면서 “헤즈볼라의 아킬레스건을 강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호출기를 표적으로 삼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정교한 공격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헤즈볼라가 골드아폴로사에서 주문한 호출기는 약 3000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은 이 회사의 AP924 모델이지만 다른 라인의 모델 3개도 선적에 포함됐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역의 대원들에게 호출기를 배포했고, 일부는 이란과 시리아에 있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에게도 전달했다. 다만 호출기를 언제 주문했고, 레바논에 언제 도착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헤즈볼라를 겨냥한 대형 폭발 사건으로 중동 전역의 확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레바논의 임시 총리 나지브 미카티는 “범죄적 이스라엘 침략”으로 규정하고 “레바논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규정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이 노골적인 침략에 대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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