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이란,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전역과 인근 시리아에서 17일(현지 시간) ‘무선호출기(삐삐)’ 수천 대가 동시다발로 폭발했다. 이로 인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쳤다고 CNN 등이 전했다. 약 300명의 부상자가 중태여서 사망자가 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지목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 또한 “폭발 몇 분 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전화해 ‘곧 작전 수행 예정’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미 일각에서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준비하던 이스라엘이 사전 공작 차원에서 무선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었다가 이것이 들킬 위기에 몰리자 터뜨렸다는 가설도 제기한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보복을 천명해 양측의 전면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7일 오후 3시 30분경부터 1시간가량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티레와 시돈, 동부 베까, 서부 헤르멜 등은 물론이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무선호출기 폭발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부상자는 헤즈볼라 조직원이며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대사도 부상을 입었다. 시리아에서도 최소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는 올 2월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 도청, 해킹 등을 우려해 구성원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중단하고 무선호출기 등을 쓰라”고 지시했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뒤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벌여 왔다. 헤즈볼라가 ‘사이버 강국’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구시대 유물인 ‘무선호출기’를 썼지만 이로 인한 공격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올 들어 수천 대의 무선호출기를 대만 통신기업 ‘골드아폴로’로부터 구입했다. 레바논 소식통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유통’이 아닌 ‘생산 단계’에서 폭발물을 심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선호출기 유통 과정 중 폭발물과 악성 코드가 삽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대립했지만 “하마스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헤즈볼라와의 확전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대규모 도발로 이 같은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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