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차기 총리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집권 자민당 총재가 당선 뒤 연일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아시아 정세를 위협하는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집단 안보 체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20년 가까이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제기해 온 이시바 총재가 새로운 일본 총리로 공식 취임하기 전부터 해당 의제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일본 안팎에선 이에 대한 논의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일본 언론들은 내달 1일 총리로 취임하는 이시바 총재가 중의원(하원)을 해산해 10월 27일 총선을 치를 방침을 굳혔다고 29일 보도했다.
● 20년간 집단안보 주장한 이시바
이시바 총재는 27일(현지 시간) 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칼럼 ‘일본 외교 정책의 장래’에서 “아시아는 나토 같은 집단적 자위 체제가 존재하지 않아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상태”라며 “중국을 서방 동맹국이 억지하기 위해서는 아시아판 나토 창설이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핵 연합에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미국 핵 공유나 핵 반입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자는 구상도 숨기지 않았다.
1951년 체결된 미일 안보 조약은 6·25전쟁 발발 이후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대를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70년 넘은 미국과의 일대일 동맹으로는 오늘날 사실상의 ‘핵 연합’이 된 북-중-러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이시바 총재의 지론이다.
이시바 총재는 2000년대부터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다른 나라가 공격받아도 자국 공격으로 간주해 무력을 행사할 권리)을 행사해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해당 주장이 선거용 공약이 아닌 20여 년간 고민해 가다듬은 정책인 만큼, 향후 미일 정상회담 등에서 직접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이시바 총재는 방위상 등 방위 정무직만 3번 지냈다. 과거사 문제나 당내 정치적 논의에서는 비주류 비둘기로 꼽히지만, 방위 안보에선 일본이 금기시하는 핵 반입까지 거론할 정도로 매파에 가깝다.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에 전향적 입장을 내비치는 것도 한미일 협력 및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위해 한국 협조를 얻기 위한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시바 총재는 취임 직후 높아진 국민적 기대감을 이용해 국회 해산 후 조기 총선에 나선다. 일본 언론을 종합하면 9일 여야 당수 토론 직후 해산해 27일 총선을 치르는 방안이 유력하다. 일본에서 국회 해산은 총리 전권 사항이다. 총리가 자신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사용한다.
● 정부 “북핵 집중된 미 확장억제 우선”
미국 행정부는 중국 등을 자극할 수 있고 한일 등이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아시아판 나토 구상에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최근 미 의회를 중심으로 긍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 미 하원 외교위 마이클 롤러 의원은 인도태평양 조약기구(IPTO) 설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법안을 제출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인 마이클 그린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도 지난해 9월 포린폴리시(FP)에 “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 전개로 이 선택이 70년 전보다 더 그럴듯해졌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일단 선을 긋는 기류다. 정부 소식통은 “현 상황에선 북핵 문제에 집중된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시스템이 선호된다”라고 강조했다. 제도화 단계로 접어든 한미 양자 간 핵우산 체제를 계속 공고하게 뿌리내리는 게 우선이지,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고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시아판 나토의 연장선상으로 미국의 핵무기를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나 핵 반입이 불러올 도미노 파장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시바 총재의 핵 공유나 핵 반입이 일본의 기존 ‘비핵 3원칙’(핵무기 제조·보유·반입 금지)을 깨는 보통 국가화를 추구하는 행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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