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수장 암살]
암살된 하산 나스랄라는 누구
무사위 이어 1992년부터 통치… 18세 장남 전쟁중 숨지자 “순교”
후임 수장에 사촌 사피엣딘 유력
27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최고지도자(64)는 친(親)이란 무장단체의 대표주자 격인 헤즈볼라를 32년간 이끌었다. 그는 이란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헤즈볼라를 ‘반(反)이스라엘 투쟁’의 구심점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차기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로는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사실상 ‘2인자’로 여겨져 온 나스랄라의 사촌 하솀 사피엣딘(60·사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20년 1월 미국의 공격으로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과 사돈 관계일 정도로 이란과 가까운 인물이다.
나스랄라는 1960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돼 이라크와 이란에서 유학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직후 헤즈볼라가 출범하자 합류했다. 설립자 압바스 무사위와 선후배 성직자 관계로 가깝게 지냈던 그는 헤즈볼라 창립 10년 만인 1992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무사위가 숨지자 최고지도자로 올라섰다. TV방송 연설에 자주 나섰고, 1997년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18세였던 장남이 사망한 직후에는 “내 아이는 순교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스랄라는 2000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수 직후 아랍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 2006년 이스라엘을 곤경에 몰아넣어 사실상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34일 전쟁’으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 기간 헤즈볼라는 레바논 제도권 정당으로 안착했다. 학교와 병원 등 사회 기반시설을 적극 마련해 헤즈볼라가 레바논 내에서 ‘국가 내 국가’로 평가받을 만큼 탄탄한 정치 기반을 다졌다.
한편 사피엣딘은 1992년 나스랄라에 이어 집행위원장에 올랐고, 미 국립국방대에 따르면 1994년부터 유력한 후계자 후보 중 하나로 거론돼 왔다. 이스라엘 매체인 와이넷에 따르면 2008년 나스랄라에 대한 암살 시도가 발생한 뒤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다. 사피엣딘은 유력 성직자 집안 출신으로 이란에서 유학했다. 또 아들은 솔레이마니 전 사령관의 딸과 결혼했다. 그가 헤즈볼라 수장에 오르면 이란과의 협력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피엣딘은 수년간 은신한 나스랄라를 대신해 대외 활동을 수행했다. 17, 18일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동시 폭발 테러 이후 열린 헤즈볼라 조직원들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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