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최정예로 꼽히는 라드완(Radwan) 특수작전부대는 그동안 이스라엘에 ‘눈엣가시’였다. 2006년 7월 창설된 이 부대 이름은 헤즈볼라의 2인자이자 군사령관이던 이마드 무그니예의 가명에서 따왔다. ‘하지 라드완’으로 불리던 무그니예는 1983년 350여 명이 사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주재 미국대사관과 미군 해병대 막사에 대한 폭탄 테러를 지휘한 혐의 등으로 미국이 현상금 500만 달러(약 66억7800만 원)를 걸고 수배한 인물이었다. 2008년 사망한 무그니예는 헤즈볼라의 영웅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무그니예의 투쟁 정신을 계승한 이 부대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남부 지역에 배치된 헤즈볼라의 5개 부대 중 하나다.
라드완 지휘 체계 타격
주요 임무는 이스라엘 영토에 침투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7일(이하 현지 시간) 이스라엘 기습과 비슷한 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 부대는 이를 위해 7~10명씩 소규모로 병력을 나눠 습격과 매복 등 도시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해왔다. 저격, 대전차전, 백병전, 폭발물 제조, 무인기(드론), 오토바이 및 전투 차량 운전 등 각종 특수 훈련을 실시했고 무인기를 비롯해 대전차미사일 등 첨단무기와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부대 병력은 2500명으로 추정되는데, 부대원들은 최신예 돌격 소총과 RPG(휴대용 로켓 발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언제든 순교할 수 있다는 정신력을 보여왔다. 시리아 내전에 참여해 각종 전투 경험을 충분히 쌓은 것은 물론, 이란에 파견돼 최정예 부대인 혁명수비대(IRGC)와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 헤즈볼라 측은 9월 17~18일 레바논 전역에서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원격 조정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선호출기(삐삐)와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 폭발 공격으로 최소 37명이 숨지고 3000여 명이 부상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이 겨냥한 공격 목표는 라드완 특수부대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Ynet)’은 9월 19일 자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무선호출기 폭발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은 수십 명으로 추정되며, 그 이상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와이넷은 헤즈볼라가 사상자 숫자를 축소한 것은 라드완 부대원의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라드완 부대가 지휘 체계의 상당 부분을 잃는 등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이다. 일부 군사 전문가도 이스라엘의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 동시다발 폭발 공격이 라드완 부대 지휘관들을 겨냥한 작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에 따르면 라드완 부대의 이브라힘 아킬 사령관은 9월 17일 무선호출기 폭발로 부상했고 20일 퇴원했다. 이스라엘은 수년 전부터 위장 회사까지 차려놓고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에 폭탄을 설치해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진행해왔다. 이스라엘 목표는 무엇보다 헤즈볼라의 통신체계 무력화였다. 비밀 작전은 모사드와 이스라엘군의 8200부대가 은밀하게 수행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레바논에서 폭발한 무선호출기들은 이스라엘이 직접 생산해 헤즈볼라에 수출한 것”이라며 “무선호출기는 대만 통신기업 골드 아폴로의 ‘AR924’ 모델이지만 이를 제조한 건 헝가리 BAC컨설팅”이라고 보도했다. BAC컨설팅은 이스라엘이 설립한 유령 회사다. 코바치 졸탄 헝가리 정부 대변인은 “해당 회사는 헝가리에 제조·운영 시설이 없는 무역 중개업체”라고 밝혔다. 모사드는 이 회사 명의로 무선호출기에 폭발물질인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PETN)와 원격 기폭장치 등을 부착해 헤즈볼라에 수출했다. 모사드는 휴대용 무전기에도 폭탄과 원격 폭발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전기들은 일본 아이콤사의 모조품으로, 해당 모델(IC-V82)은 단종됐다.
“휴대전화 해킹” 가짜 정보에…
8200부대는 이번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부대 이름에 들어간 숫자는 히브리어로 ‘시모네 메타임’으로, ‘팔천이백’이 아닌 ‘팔이백’으로 읽는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암호 해독과 정보 수집 활동을 위해 설립된 8200부대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영국 도감청 전문 정보기관 정보통신본부(GCHQ)에 비견될 정도인 이스라엘의 안보 핵심 부대다. 엘리트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신호 정보 감청, 암호화, 방첩, 사이버전, 군 정보 수집 및 정찰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한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이 부대가 이번 작전에 깊이 개입했다면서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 제조 공정에서 폭발물 삽입 방법을 테스트하는 등 여러 기술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이 부대는 2010년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원심분리기를 무력화한 ‘스턱스넷 공격’, 2017년 레바논 국영 통신 회사 오게로를 표적으로 한 사이버 공격, 2018년 호주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가는 민간 항공기를 표적으로 한 이슬람국가(IS) 공격 저지 작전 등에 참여했다. 이번 작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스라엘이 휴대전화를 해킹할 수 있다는 ‘가짜 정보’를 퍼뜨려 헤즈볼라로 하여금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를 사용하게끔 유도했다는 점이다.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2월 대원들에게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 명령을 내린 이유는 이스라엘이 휴대전화를 해킹해 원격으로 카메라나 마이크를 몰래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사용자를 감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나스랄라 등 헤즈볼라 지도부는 도감청과 위치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선호출기나 무전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정보 전문가들은 유령 회사 설립, 무선호출기 및 휴대용 무전기 제작, 폭탄 설치, 가짜 정보 유포 등 일련의 작전을 준비하는 데 최소 2년은 걸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척 프레일리히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와 같은 작전에는 100단계가 있고 그 모든 단계가 완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노린 또 다른 목표는 라드완 부대 지휘부 등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9월 20일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 지역의 한 건물에 있던 아킬 사령관을 전투기를 동원해 표적 공습했다.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당시 “아킬 사령관과 함께 최소 10명의 라드완 부대 지휘관이 사망했다”며 “이들은 민간인을 인간 방패 삼아 다히예 중심부 주거용 건물에서 이스라엘 북부 민간인 테러를 모의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아킬 사령관은 1983년 베이루트 폭탄 테러 공격을 무그니예와 함께 지휘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그의 목에 700만 달러(약 93억4300만 원)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헤즈볼라 최고 군사기구 ‘지하드위원회’ 위원인 아킬 사령관은 2004년부터 라드완 부대 작전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스라엘은 7월 아킬의 전임자였던 푸아드 슈크르 라드완 부대 사령관도 제거한 바 있다. 하가리 소장은 아킬 사령관과 라드완 부대 지휘관들이 하마스가 주도했던 이스라엘 남부 공격과 비슷한 이른바 ‘갈릴리 정복’이라는 침공 계획을 모의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유일한 방법은 군사적 행동”
이스라엘은 9월 16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재한 안보 내각 회의에서 가자지구 전쟁의 목표를 헤즈볼라 공격 때문에 피란을 간 북부 지역 주민의 귀환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 하루 만인 지난해 10월 8일부터 하마스 지지 및 연대를 표명하며 로켓, 미사일 등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이 있는 북부 지역을 공격해왔다. 이 때문에 북부 지역 마을들에 살던 이스라엘 주민 6만여 명이 피란해야 했고,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목표는 △하마스의 군사 및 통치 능력 제거 △모든 인질 귀환 △가자지구가 더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등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북부 지역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사적 행동뿐”이라고 강조한 점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이 무선호출기, 휴대용 무전기 폭발 공격으로 헤즈볼라의 통신망과 라드완 부대 무력화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전투기를 동원해 레바논 남부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지상부대 투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직후부터 하마스를 지원하겠다며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해온 헤즈볼라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9월 23일 레바논을 대대적으로 폭격했고,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공습으로 최소 49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공세에 헤즈볼라도 강력하게 맞설 것이 분명한 만큼 양측의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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