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허리케인 헐린의 영향으로 사망자만 200명이 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은 뒤 소셜미디어에선 “정부가 날씨를 조작해 공화당 우세 지역만 피해를 입었다”는 ‘재난 음모론’이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특히 다음 달 대선에서 핵심 경합주로 꼽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와 관련된 루머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온라인에선 백악관이 이른바 ‘날씨 제어 기술’로 헐린의 경로를 조작해 민주당 우세 지역을 피해 가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구독자가 55만여 명인 극우 평론가 스튜 피터스는 노스캐롤라이나주가 풍부한 리튬 매장지라는 점을 들며 “기업들이 리튬을 쉽게 채굴할 수 있도록 미 국방부가 헐린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폈다. 극우 성향인 공화당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도 3일 X에 “그들(조 바이든 행정부)은 날씨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게시글을 올리며 동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마저 이런 음모론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그는 헐린이 덮친 뒤 대선 유세에서 잇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연방 재난기금을 불법 이민자들에게만 쓰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연방항공청(FAA)이 노스캐롤라이나주로 가는 개인 구호 항공편을 차단하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케빈 코빈 상원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이런 주장들을 열거하며 “쓰레기 음모론을 퍼나르지 말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벤 러볼트 백악관 공보국장도 4일 “사기꾼과 악의를 가진 이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즉시 중단을 촉구했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공식 홈페이지에 영어와 한국어 등 12개 언어로 가짜뉴스에 대한 사실 확인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불붙은 음모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공화당 소속인 마크 로빈슨 노스캐롤라이나 부지사조차 X에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항공기는 대부분 개인 소유”라며 주 정부가 대응에 소홀하다고 주장했다. 가짜뉴스 전문가인 케이트 스타버드 워싱턴대 교수는 “재난은 쉽게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가짜뉴스는 재난 대응이나 피해 복구는 물론이고 예방책 마련도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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