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왕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목동이던 청소년 시절 적국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일화로 유명하다. 기원전 1010년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국왕이 된 다윗은 지금의 예루살렘을 점령해 수도로 삼았고 주변 적대세력들을 물리치며 영토를 확장했다. 다윗은 40년간 집권하면서 예루살렘에 거대한 성전 건축을 위한 터전을 닦는 등 이스라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제2의 다윗’이라는 말을 들어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 전쟁’을 계기로 중동 지역 안보 질서를 재편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최우선 목표는 지리상 인접성과 견고한 전력으로 이스라엘을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해온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무력화다.
저항의 축 무력화 나선 이스라엘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이란의 대리 세력이자 이른바 ‘저항의 축’ 세력의 핵심이다.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적대적인 이란은 그동안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통해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해왔다. 게다가 이란으로부터 무기·자금 지원을 받아온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영토를 자신들 땅으로 만들려는 야욕까지 보이고 있다. 이들의 의도를 아는 네타냐후 총리는 2022년 12월 극우정당들과 연립정부를 출범하며 크네세트(의회)에 갈릴리, 네게브, 골란고원, 유대, 사마리아(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식 명칭)의 정착촌 확장과 개발을 주요 목표로 하는 연정 구성 합의서를 제출했다. 이 합의서 내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 등 팔레스타인 땅에 세운 정착촌은 불법”이라는 결의를 위반했다. 나아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과 국경을 맞댄 레바논 남부까지 영토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마저 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동안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추진해왔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네타냐후 총리의 야심을 꺾고자 무력 도발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7일(이하 현지 시간) 하마스 2인자로 가자지구를 통치하던 야히야 신와르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 계획을 세우고 대원들을 대거 동원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당시 하마스 대원들은 이스라엘 주민 1200여 명을 살해했고 250여 명을 납치하는 등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명분 삼아 가자지구에 대규모 지상 병력을 투입해 하마스 소탕작전에 나섰다. 이에 지난 1년간 가자지구는 초토화됐다. 하마스 대원을 포함해 가자지구 주민 4만1825명이 사망했고 9만6000여 명이 부상했다. 전체 주민 215만 명 가운데 90%가 피란길에 올랐으며 병원과 전력시설 등 사회기반시설 다수가 폭격으로 무너졌다. 주택 22만7591채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가자지구 경제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350년이 걸릴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유엔 총회에 제출했다.
신와르 제거에도 강경 입장 고수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지금까지 살해된 지도부를 보면 1월 하마스 서열 3위이던 살레흐 알아루리 정치국 부국장, 3월 마르완 이사 군사조직 부사령관, 7월 무함마드 데이프 알카삼 여단 사령관 등이 있다.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최고지도자도 7월 31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수도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안전가옥에서 폭사당했다. 하니예 후임으로 하마스 수장이 된 신와르 역시 10월 16일 이스라엘군 훈련부대에 포착, 사살됐다. 신와르 사살은 이스라엘군 남부 사령부 소속 ‘828비슬라크’ 여단의 분대장 훈련생들이 가자지구 남부도시 라파 서부의 탈 알술탄 지역 주택가를 순찰하던 도중 하마스 전투원들과 전투를 벌이며 촉발됐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건물로 피신한 하마스 전투원들의 위치를 드론으로 확인한 후 전차로 포격했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은 건물을 수색하면서 시신 한 구가 신와르와 흡사하다고 생각해 치아, DNA, 지문 검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신와르로 확인됐다. 신와르가 사망한 장소는 이스라엘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들은 그동안 신와르가 암살을 피하려고 땅굴에서 이스라엘 인질들과 함께 머물렀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신와르의 최후 모습이 담긴 20초 분량 영상을 보면 그는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소파에 힘없이 앉아 있었고, 자신을 탐지하려는 드론을 향해 나무 막대기를 던지며 위치가 발각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몸부림쳤다. 신와르를 제거한 것은 가자 전쟁의 최대 성과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0월 23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에게 “신와르의 죽음을 계기로 가자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신와르 제거는 인질 귀환과 전쟁 목표 달성, 전후 계획에 긍정적일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스라엘군은 여전히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원들을 소탕하고 있으며 땅굴 색출과 파괴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군사시설을 대거 파괴한 데 이어 ‘돈줄’인 알카르드 알하산(AQAH)도 집중 공습했다. 헤즈볼라의 은행을 마비시켜 자금을 끊고 조직 재건을 막으려는 의도다. 헤즈볼라 대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등 금융 업무를 도맡고 있는 AQAH는 수도 베이루트 인근 다히야를 비롯해 레바논 전역에 30여 개 지점이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도부 제거에도 적극 나서왔다.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인 푸아드 슈크르 헤즈볼라 작전계획 고문이 7월 사망한 데 이어 9월 이브라힘 아킬 라드완 특수작전부대 사령관과 나스랄라도 숨졌다. 나스랄라의 사촌인 하심 사피에딘 헤즈볼라 집행위원장도 10월 폭사했다. 레바논에선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2309명이 사망하고, 120만 명 넘는 주민이 피란민 신세가 됐다. 이스라엘이 맹공을 퍼붓는 것은 저항의 축 세력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다. 이스라엘로선 레바논 남부와 국경을 맞댄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갈릴리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남다르다. 예수의 33개 기적 중 25개가 이곳에서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가 부활해 제자들을 만났다는 곳도 갈릴리이며,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11명이 갈릴리 출신이다. 예수 고향인 나사렛도 이곳에 있다. 헤즈볼라는 가자 전쟁이 발발하자 하마스를 지원하기 위해 갈릴리 지역에 로켓 공격을 감행했고, 이 때문에 이곳 주민 6만여 명이 피란 생활을 해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국경에서 30㎞ 떨어진 리타니강 북쪽으로 헤즈볼라를 밀어낸다는 계획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의 전면전 이후 양국 국경과 리타니강 남쪽에 헤즈볼라 주둔을 금지하고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고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이 지역의 국경 마을들을 요새화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땅굴도 대거 구축해왔다.
“비비 왕이 돌아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중동 안보 질서와 힘의 균형을 자국에 유리하게 바꿔놓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고와 만류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강경 일변도의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별칭) 왕’이 돌아왔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시오니즘을 철저히 신봉해왔다. 시오니즘은 유대인의 옛 땅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는 유대 민족주의를 뜻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부친은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저명한 역사학자 벤지온 네타냐후다. 특공대원이던 친형 요나탄 네타냐후는 1976년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에게 납치된 여객기 승객들을 구출하는 ‘엔테베 작전’ 당시 숨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안보가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저항의 축 세력들을 무력화하고, ‘이슬람주의’를 대표하는 숙적인 이란과도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9월 2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구약성서 사무엘상 15장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의 영속성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방의 중동 전문가들은 “향후 중동 정세의 향방은 전쟁을 주도해온 네타냐후 총리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말 그대로 네타냐후 총리의 ‘성전(聖戰)’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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