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경제와 국경을 망가뜨렸다. 우린 질렸고(fed up) 변화를 원한다.”(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자)
“난 공화당원이지만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했다. 트럼프는 ‘위험한 사람(dangerous person)’이다.”(해리스 후보 지지자)
미국 대선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번 대선의 최대 경합지로 꼽히는 북동부 펜실베이니아주를 21일(현지 시간) 찾았다. 대선 승자를 결정하는 538명의 선거인단 중 19명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주는 이번 대선에서 ‘왕관의 보석(Crown Jewel)’으로 불린다. 군주가 쓰는 왕관에서 특히 중요한 보석처럼 펜실베이니아주가 이번 대선의 판세를 좌우하는 핵심 지역이라는 뜻이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9일까지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주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와 인근 교외 지역인 벅스카운티 내 레빗타운, 피스터빌트레보스 등을 방문한 결과 대선을 앞두고 ‘갈라진 미국’ ‘두 개의 미국’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와 농촌,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등이 각각 다른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을 지지하고 있었다.
도시와 농촌의 성향을 모두 지닌 벅스카운티는 많은 언론이 이번 대선의 ‘벨웨더(bellwether·선거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로 부르는 곳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예 ‘미국을 들여다보는 유용한 렌즈’라고 했다.
레빗타운의 사전투표소는 평일 오전 10시임에도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유권자들로 북적였다. 현장 관리 요원은 “매일 오후 4시 반까지만 투표가 가능해 오후 2시 반쯤부터는 아예 줄을 서지 말라고 권유한다. 오래 기다려도 투표를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례 없는 초박빙의 대선인 데다 극명하게 다른 후보가 맞붙다 보니 사전투표 열기가 엄청나다는 뜻이다.
도심선 ‘해리스 강세’ 교외선 ‘트럼프 우세’… 둘로 쪼개진 격전지
[2024 미국 대선 D-8]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 르포 선거결과 예측 ‘벨웨더’ 벅스카운티… “끔찍한 경제 해결 위해 트럼프 돼야” 필라델피아 분위기는 사뭇 달라… 사전투표 20명중 “트럼프 지지” 0명
이날 벅스카운티에선 최근 지지율 상승세를 탄 트럼프 후보 지지자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불법 이민자 증가를 비판하며 “트럼프를 찍겠다”고 한 흑인 유권자도 있었다.
반면 필라델피아에선 해리스 후보 지지 분위기가 강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해리스 후보가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등 주내 대도시와 그 교외의 민주당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교외는 트럼프 지지 분위기 강해
인구가 약 2만8000명인 벅스카운티의 소도시 피스터빌트레보스는 20일 트럼프 후보의 방문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 트럼프 후보는 이곳의 맥도널드 매장을 찾아 감자를 튀기고 드라이브스루 주문을 직접 받았다.
21일 방문한 이 매장은 “지역민이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점을 매장 곳곳에서 안내문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맥도널드는 미국인 8명 중 1명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일해본 기업”이라며 “단순한 일자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벅스카운티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는 한 중년 백인 여성은 “이곳에서 트럼프 후보의 모습을 보는 것이 꽤 좋았다”며 “보통 정치인들은 큰 도시만 신경 쓰기 때문에 이 작은 마을에 온 사람이 트럼프라는 건 의미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중년 백인 여성은 “끔찍한 경제 상황을 해결하려면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운영하던 사업체를 잃었다”며 “물가는 너무 높고 돈이 없어 직원 월급을 줄 수 없었다. 폐업이 불가피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년의 흑인 여성인 폴린 씨도 “이민자들이 올바른 방식(right way)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불만을 토했다. 사실상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미였다.
트럼프 후보의 방문 뒤 피스터빌트레보스의 맥도널드 매장은 ‘온라인 전쟁터’가 됐다. 이 식당의 온라인 리뷰 공간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댓글 싸움을 벌인 것. 식당 리뷰 앱 ‘옐프’는 이 매장에 대한 댓글 달기 기능을 중지시켰다.
● 도심은 해리스 지지자가 많아… 젊은층 이탈은 ‘빨간불’
펜실베이니아주 최대 도시인 필라델피아의 분위기는 벅스카운티와 사뭇 달랐다. 시청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이들은 대부분 “해리스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20여 명을 인터뷰 하는 동안 트럼프를 찍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이날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투표 현장에 나온 백인 노부부는 “공화당원이지만 해리스를 뽑았다. 트럼프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이렇게 갈등이 심한 대선은 본 적이 없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30대 흑인 남성 크리스 씨는 “해리스 후보에게 투표하러 왔는데 줄이 너무 길어 내일 다시 오려 한다”며 “흑인 남성들이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건 미디어가 하는 말일 뿐, 내 주변 흑인 남성 중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전투표소 밖에서는 일정 부분 다른 기운도 감지됐다. 거리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3명은 “투표를 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다.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꽤 있다”고 했다. 그들은 “젊은 세대면 진보인 민주당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번 대선에선 국제 문제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가자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이 아닌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는 해리스 후보에 대해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20대 흑인 여성 해나 씨 역시 “나는 해리스 후보에게 사전투표를 했지만 주변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젊은 유권자가 많다”며 “젊거나 흑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리스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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