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反)간첩법을 개정한 뒤 첫 한국인 구속 사례가 확인되면서 중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해당 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정보와 기술 등을 유출했다는 근거나 정황이 부족해도 반간첩법의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국가 안보나 이익에 해를 줄 수 있는 기밀을 유출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고발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9일 주중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올 5월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한국 국적의 50대 남성 A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근무하다 2016년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회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이직했다. 이후 중국의 다른 반도체 회사 2~3곳에서 일했다. 중국 수사당국은 그가 창신메모리에 일하던 당시 내부의 핵심 기술 관련 정보를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한국 기업들과 교민단체 등에 따르면 A 씨처럼 한국에서 일하다 중국 회사에 영입된 한국인 기술직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10여 년 전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같은 분야에 집중 투자하면서 기술력에서 앞선 한국 기업 출신 인력을 대거 채용했다. 특히 한국에서 공장 운영이나 주요 공정 관리 경험이 있는 인력을 선호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건너온 기술 분야 인력들은 공장이 안정되면 좀더 좋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회사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는 이직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먼저 다니던 중국 회사와 관계가 틀어지면 회사가 보복성으로 ‘반간첩법을 위반했다’며 당국에 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나오는 건 반간첩법의 적용 범위가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반간첩법에 따르면 국가 기밀 외에도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과 데이터를 취득하거나 불법 제공한 경우도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국가 안보와 이익의 개념이 구체적이지 않아 주요 산업의 공정 관리에 관여한 외국인 기술자와 중국 기업과 협력한 외국 기업에 반간첩법에 따른 기술 유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또 중국 당국이 수사를 통해 안보와 국익과의 관련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체포된 일본인 제약회사 직원을 포함해 2014년 반간첩죄가 시행된 이후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해당 법으로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29일 “반간첩죄 혐의로 한국인을 체포했고,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필요한 편의를 제공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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