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57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홍수로 최소 217명이 숨진 스페인에서 펠리페 6세 국왕 부부와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수해 현장을 찾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당국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주민들이 욕설과 함께 진흙 세례를 퍼부었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펠리페 6세는 3일 수해로 최소 62명이 목숨을 잃은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레티시아 왕비와 산체스 총리,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와 함께 방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들을 향해 진흙과 물건 등을 던지며 “살인자” “부끄러운 줄 알라”며 외쳤다. 경호원들이 급히 우산 등으로 보호에 나섰지만, 펠리페 국왕 부부의 얼굴과 옷에 진흙이 묻은 모습이 목격됐다. BBC에 따르면 주민들의 공격을 피해 현장을 빠져나가던 산체스 총리 탑승 차량에는 돌맹이가 날아들기도 했다.
스페인에선 국왕을 향해 물건을 던지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분노에 극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이에 펠리페 6세는 이후 소셜미디어 영상에서 “주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한다”며 위로했다. 산체스 총리도 앞서 2일 기자회견에서 “군인과 경찰 1만 명을 추가 파견하겠다”며 “우리의 대응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참사는 폭우가 내린 직후인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됐다. 다리가 무너지고 마을이 진흙으로 뒤덮이며 많은 지역이 고립됐다. 물과 음식, 전기 등 기본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는 상태가 며칠째 이어졌다. 3일 기준 사망자 수는 최소 217명으로 파악됐으며, 실종자가 적지 않아 숫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현지 언론은 “1967년 포르투갈에서 최소 500명이 목숨을 잃은 대홍수 이래 유럽에서 발생한 최악의 홍수 재해”라고 전했다.
피해 주민들은 이번 참사가 당국의 미흡한 대응으로 벌어진 인재(人災)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 기상청이 폭우 ‘적색경보’를 발령한 뒤 지역 주민에게 긴급 재난 안전문자가 발송될 때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느린 대응으로 인명 피해가 더 커졌다는 판단이다. 마손 주지사가 비상대책위원회가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해산하는 바람에 대처가 더 늦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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