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앤디(Andy)’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앤드류(Andrew)’의 ‘r’을 발음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쓰는데 어려움을 겪던 저를 위해 수년 간 언어치료 선생님이 거의 매일 애써주셨던 걸 기억합니다. 바로 이런 공교육이 기회를 의미하며, 그것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본질입니다.”
5일(현지 시간)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한국계로는 사상 최초로 당선된 앤디 김 뉴저지주 하원의원은 지난달 지역교육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의원은 당선 기자회견에서도 미국에 대한 존중과 그 고마움을 되갚겠다는 진정성 있는 약속을 내놓았다. 또 “재미교포 역사 120여년 만에 이런 기회를 가지게 됐다”며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저지주에서 그의 당선에 의심을 품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상원의원이자 세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 교육의 힘 믿는 이민 2세
김 의원은 1982년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나온 아버지 김정한 유전공학 박사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장재순 씨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 박사는 소아마비를 앓으며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 온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부모의 유학생활 중 보스턴에서 태어난 김 의원은 교육을 중시한 부모의 선택에 따라 뉴저지 남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김 의원은 “당시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날 워싱턴DC로 데려가 왜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했는지 설명했다”며 “‘기회를 준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시카고대 졸업 뒤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무부 공무원이자 이라크 전문가로 2013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했던 그는 31세의 나이에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라크에 관해 자문하는 유일한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자 2018년 뉴저지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공화당 현직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했다.
● 묵묵히 의사당 청소해 스타덤
그가 이른바 ‘전국구 스타’가 된 건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태’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의사당에 혼자 새벽까지 남아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며 ‘참 정치인’이란 호평이 쏟아졌다. 당시 AP통신은 “그는 일반적인 정치인보다 겸손하고 근면한 모습으로 보여졌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의 이런 성실함은 지난해 뉴저지주 연방 상원의원인 밥 메넨데스(민주당)가 현금과 금괴 등을 받은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며 더욱 부각됐다. 메넨데스를 대신해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한 그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김 의원은 당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 나라를 치유하자”고 역설했다.
상원의원 출마 당시 상황도 화제가 됐다. 김 의원은 메넨데스가 기소된 다음날에 “당 중진들의 허락이 먼저”라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격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인사는 “김 의원은 기존 관례보다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라고 전했다.
옥스퍼드대 유학 시절 캐나다 출신 중국계 변호사인 카미 라이를 만나 2012년 결혼한 김 의원에겐 8, 6세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과 레고를 조립하거나 카드 게임을 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자주 공유하는 평범한 ‘아들 바보’이기도 하다. 누나인 모니카 김은 매디슨 위스콘신대 현직 교수로 저명한 역사학자다.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 축하 인사를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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