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보도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 군인들이 이오지마섬에서 성조기를 꽂던 사진이 유명해진 건 결국 일본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사진기자가 신문 칼럼을 쓰는 코너가 7일 예정돼 있었다. 신문 제작 특성상 미리 칼럼을 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미국 대선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연설 도중 피습당했다. 그 때 공개된 AP 기자 에반 부치가 찍은 사진에 트럼프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진가들도 감탄했다. 돌발 상황에서 완벽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나부끼는 성조기. 이 사진으로 트럼프는 ‘머그샷’까지 찍던 피의자에서 죽음마저 피해 간 ‘불사조’가 됐다.
사건 당일 단상 앞에는 다른 기자들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어깨에 장착된 보디캠에 기록된 당시 현장의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는 트럼프와 경호원들을 카메라를 높이 든 채 셔터를 연사하며 따라갔다. 갑자기 워싱턴포스트 기자 앞에서 한 기자가 뛰어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에반 부치였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 달리 그는 찍어야 할 순간에만 셔터를 누른 뒤 빠르게 이동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총을 적진에 난사하는 군인이었다면 에반 부치는 한발 한발 신중하게 격발하는 저격수 같았다.
에반 부치는 사건 직후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짧은 순간 트럼프가 향할 대피로를 생각해 내 무대 반대편으로 달려갔다’라고 밝혔다.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쪽으로 게티이미지 기자가 뒤늦게 달려왔다. 그러나 이미 트럼프는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세상은 한 장의 이미지만 기억한다. 수많은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노련했던 기자 에반 부치가 특종을 거머쥐었다. 이 사진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의 기폭제가 됐고, 트럼프 지지자들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기자는 에반 부치의 트럼프 사진이 인정받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사건 발생 당시 미국 대선은 아직 4개월 여 남아 있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사진은 그냥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6일(현지 시각) 예상과 다르게 싱겁게 제47대 대통령은 트럼프로 확정됐다. 이로써 에반 부치의 ‘트럼프 피습 순간’의 사진은 마침내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으로 완성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을 당연히 한국의 신문들은 1면 사진에 수록했다. 그중 가장 트럼프의 재선 순간을 멋지게 담아낸 사진. 이 사진 역시 에반 부치의 사진이었다. 그의 나머지 트럼프 유세 현장의 사진들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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