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뒤바꿀 트럼프와 머스크 ‘브로맨스’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11월 17일 09시 09분


트럼프 당선 일등공신 머스크 “연방예산 2조 달러 삭감” 공언

미국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10월 19일(이하 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서 청중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11월 5일 대선 투표일까지 매일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와 제2조(총기 소지 권리 보장)를 지지하는 청원서 서명자 중 1명을 무작위로 뽑아 100만 달러(약 14억 원)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지급 대상은 7개 경합주 중 한 곳에 거주하는 등록 유권자다. 머스크는 그동안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대선 승패를 좌우할 7개 경합주에 거주하는 청원서 서명자에게 인당 47달러(약 6만6000원)를 지급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오른쪽)가 10월 5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오른쪽)가 10월 5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돈줄이자 단비

이 이벤트는 사실상 트럼프 지지자를 끌 모으려는 의도로 기획됐다. 미국 법무부는 해당 이벤트가 불법적인 매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머스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른바 ‘트럼프 복권’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7개 경합주에 거주하는 유권자 100만여 명이 참여했다.

머스크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돈줄’ 역할을 했다. 그가 트럼프와 공화당에 지원한 금액은 1억3200만 달러(약 1850억 원)에 달했다.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을 위해 슈퍼팩(super PAC: 정치자금 모금 단체) ‘아메리카 팩’을 설립해 1억500만 달러(약 1475억5650만 원)를 지원한 것은 물론, 공화당의 연방 상원의원 선출을 목표로 하는 슈퍼팩 ‘상원 리더십 펀드’에 1000만 달러(약 140억5000만 원)를 기부했다. 몬태나와 네바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위해 투표 독려 활동을 하는 슈퍼팩 ‘센티널 액션 펀드’에도 230만 달러(약 32억3000만 원)를 지원했다.

머스크의 재산은 트럼프 당선 이후 500억 달러(약 70조2700억 원)가 증가해 11월 9일 기준 3137억 달러(약 440조9000억 원)를 기록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세계 1위다. 그는 테슬라를 비롯해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옛 트위터), 인공지능(AI) 회사 xAI, 뇌신경과학 기업 뉴럴링크 등을 소유하고 있다.

머스크 입장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원하는 자금은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머스크의 지원은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 비해 모금액이 부족했던 트럼프에게는 단비였다. 블룸버그통신은 머스크가 올해 미국 정치 기부자 중 최상위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머스크는 트럼프와 함께 유세 활동을 벌였으며, 7대 경합주에서 독자적으로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규제는 혁신 몰살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뉴시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뉴시스]
머스크는 원래 민주당 지지자로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전 대선 후보, 2020년 조 바이든 대선 후보에게 각각 투표했다. 그가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린 이유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적극 추진해온 빅테크에 대한 강력한 규제 조치 때문이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규제’다. 머스크는 5월 6일 밀컨 콘퍼런스에서 ‘인류를 구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마이클 밀컨 밀컨연구소 회장과 대담하면서 “사람은 죽지만 규제는 죽지 않는다”며 “규제는 혁신을 몰살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통해 캘리포니아주를 통과하는 초고속 열차인 ‘하이퍼루프’를 추진했지만 주정부의 규제로 현실화하지 못한 점을 예로 들었다.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 신봉자로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X 등 SNS에서 오가는 메시지를 통제하려 한다고 비난해왔다. 머스크는 X를 통해 이민·의료 정책을 비판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범정부적으로 추진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에 반대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백악관에서 전기차 정상회담을 열며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경영진만 초대하고 머스크를 제외한 것도 문제가 됐다. 머스크는 이때부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난 머스크는 캐나다, 미국, 남아공 등 세 국가 국적을 갖고 있다. 이혼을 두 번 했고, 부하 임원과 체외수정을 통해 12번째 자식을 낳았는데도 종종 다른 여직원들에게 자기 정자를 받아가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괴짜다. 그는 남아공 프리토리아 보이즈고교를 졸업한 뒤 캐나다 퀸스대(경영학)를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뒀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이후 1995년 미국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을 중퇴한 그는 온라인 전자결제업체 페이팔을 창업해 대성공을 거뒀다. 머스크는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한 뒤 전기차 생산업체 테슬라를 만들었고, 2002년 스페이스X도 설립했다.

10월 13일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에서 스페이스X의 초대형 발사체 스타십이 시험비행을 위해발 사되고 있다. [뉴시스]
10월 13일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에서 스페이스X의 초대형 발사체 스타십이 시험비행을 위해발 사되고 있다. [뉴시스]
바이든 지지하다가 트럼프로 돌아서

어린 시절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던 그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전기기계 공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하고 12세에는 비디오 게임 코드를 직접 짜 500달러(약 70만 원)에 팔기도 한 그는 하루 10시간씩 독서하는 지독한 책벌레였으며, 판타지나 공상과학 소설에 심취했다고 한다. 심지어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이런 그에게 자신의 사업을 옥죄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규제는 적으로 보일 법하다.

머스크는 과거 트럼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2018년 트럼프 1기 정부 때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참여했지만,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자 활동을 그만뒀다. 그는 트럼프와 공개 설전을 주고받기도 했다. 트럼프는 “머스크는 믿을 수 없는 허풍쟁이”라고 비판했고, 머스크는 “당신이 싫지는 않지만 이제 모자를 벗고 일몰 속으로 사라질 때”라며 정치 은퇴를 요구했다. 그는 올해 3월까지만 해도 “두 후보(바이든과 트럼프)에 돈을 기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머스크는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도중 암살 기도 사건으로 부상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기후변화를 늦추자는 신념으로 전기차를 팔아 세계 최고 부자가 됐지만, 이제 기후변화를 부인하고 전기차 산업을 위축시킬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트럼프 당선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유는 트럼프가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 조치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가 머스크와 가까워진다 해도 전기차에 대한 입장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 메이저와 석유 관련 기업들, 내연기관에 의존하는 각종 운송수단 생산업체가 트럼프와 공화당의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오래전부터 탄소배출 규정 강화 반대와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머스크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는 테슬라의 단기 이익을 희생해 더 큰 목표를 추구하려는 의도 때문으로 보인다. 앤드루 워드 미국 리하이대 경영학과 교수는 “AI부터 우주 탐사, 신경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투자한 머스크에게 테슬라는 최종 목표가 아니다”라며 “머스크는 장기적 야망과 이익을 위해 테슬라의 단기 이익 일부를 희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11월 13일 자신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머스크를 신설 예정인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에 내정했다. 트럼프는 인도계 출신 기업가이자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비벡 라마스와미도 머스크와 함께 정부효율부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머스크도 “연방정부 예산을 최소 2조 달러(약 2810조 원) 삭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스크가 정부 예산 삭감 목표치로 제시한 2조 달러는 2024년 회계연도 연방정부 지출액(6조7500억 달러·약 9493조8750억 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머스크가 정부효율부 수장이 될 경우 예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연방 공무원 200만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해고 칼날을 휘두를 수 있다고 예상한 바 있다.

우주·자율주행 규제 완화되나

머스크는 우주 사업이나 테슬라의 역점 사업인 자율주행 등 전기차 사업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9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스페이스X 로켓 발사 과정에 안전 규정 위반 문제가 있다며 벌금을 물리자 크게 반발하며 FAA 수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머스크의 구상대로 미국 도로에서 완전자율주행 기술을 펼칠 수 있는 시기가 앞당겨지면 테슬라는 단순한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 첨단 기술회사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트럼프 당선 후 테슬라 시가총액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1조 달러(약 1406조8000억 원)를 돌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머스크는 11월 6일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화 통화에 배석하는 등 실세로 부상하고 있다. 정상 간 통화에 기업인이 배석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머스크는 같은 날 진행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도 참여했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브로맨스(bromance)’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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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5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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