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가 24일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해 논란이 되자 정부가 행사에 불참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정무관(차관급)은 내빈 인사에서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약 15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 동원돼 차별받은 사실은 물론이고 사죄나 유감의 표현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추도식은 앞서 7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우리 정부에 매년 개최하겠다고 약속한 핵심 조치였으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인사를 참석시키면서 첫해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는 파행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본은 오히려 추도식 직전인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배포한 입장을 통해 “한국과 정중한 의사소통을 실시해 왔다. 한국 측이 불참한다면 유감스럽다”며 행사 파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렸다.
외교부는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 전날인 23일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 계획을 밝혔다. 당초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일본에 도착한 정부 당국자들과 유가족 9명은 25일 사도광산 옛 기숙사 터에서 별도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
정부는 22일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 참석 일본 대표로 발표한 이쿠이나 정무관의 이력이 논란이 되자 일본 측에 인사 교체를 요청했으나 일본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추도식에서 일본 대표의 추도사 내용에 추모와 반성 등 의미를 담아 달라는 정부 요청에도 일본은 명확한 입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이 참석자를 포함한 추도식 준비 과정에서 강제 노역을 한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는 진정성 있는 조치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를 우리 정부가 사실상 방관하면서 ‘총체적 외교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이 먼저 조치를 취하거나 양보하면 일본이 호응할 것이라는 이른바 ‘일본이 물컵의 절반을 채울 것’이라는 선의에 기댄 현 정부 대일 외교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외교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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