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전술의 대가’ 푸틴, 핵전쟁 위협하며 ‘미치광이 전술’ 구사

  • 주간동아
  • 입력 2024년 12월 1일 09시 04분


핵교리 개정·핵 공격 가능한 IRBM으로 서방 협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기만전술의 대가’라는 말을 들어왔다. 푸틴이 ‘푸노키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푸노키오는 푸틴과 피노키오의 합성어다.

마스키로프카가 몸에 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푸틴은 그동안 피노키오처럼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대표적 사례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들 수 있다. 푸틴은 2022년 2월 24일(이하 현지 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공격 의도가 전혀 없다” “국경지대에 배치한 군대는 훈련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안전 보장과 평화만 원할 뿐이다” 같은 변명을 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등 서방을 기만하려는 전술이었다. 티모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는 푸틴의 이런 행동을 전형적인 ‘마스키로프카(maskirovka)’라고 규정했다. 마스키로프카는 상대를 속이고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기만을 뜻한다. 푸틴은 옛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1975~1991년 장교로 근무했고 중령까지 지냈다. 그는 과거 동독에 파견돼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했다. 푸틴은 마스키로프카가 몸에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가 11월 21일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 때도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에 공포심을 극대화하고자 기만전술을 구사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격했다고 착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정보기관은 미사일 공격 며칠 전부터 ICBM으로 우크라이나를 타격할 것이라는 가짜 정보를 흘렸다. 친정부 성향의 러시아 일간지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MK)’는 우크라이나가 브랸스크주 카라체프에 있는 제1046 무기고를 미국이 제공한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미사일로 공격한 데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가 ICBM 공격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 등 서방 각국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대공습에 대비해 대사관들을 긴급히 임시 폐쇄하고 대피령까지 내렸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각국은 러시아가 ICBM까지 동원하는 것은 핵을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까지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언론은 러시아의 공격 직후 자국 공군의 발표를 인용해 해당 미사일이 RS-26 루베즈라는 ICBM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러시아 크렘린궁과 국방부 등은 ICBM 발사 여부 확인조차 거부했다.

공포가 극대화됐을 때 푸틴은 대국민 연설을 위해 러시아 국영TV ‘로시야 1’ 채널에 출연해 여유 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서방이 우크라이나가 에이태큼스 등 첨단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한 데 대한 대응 조치로 극초음속 IRBM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현재 실험하고 있는 이 미사일을 ‘오레시니크’라고 명명했다”며 “이 미사일에는 핵이 아닌 재래식 탄두가 탑재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레시니크에 대해 “마하 10(약 1만2240㎞/h) 속도로 목표물을 공격한다”며 “전 세계에 있는 최신 방공 시스템과 미국·유럽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도 이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당초 우크라이나와의 지역 분쟁이던 것이 서방 측 도발로 세계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며 “더 많은 미사일 공격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오레시니크 미사일을 발사하기 30분 전 미국에 사전 통보했다”고 밝혔다.

‘개암나무 미사일’ 꺼내 든 러시아

러시아군이 2022년 4월 20일 세계 최대 규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28 사르마트를 시험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러시아군이 2022년 4월 20일 세계 최대 규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28 사르마트를 시험발사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오레시니크 미사일을 사거리 3000~5500㎞인 IRBM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미사일은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MIRV)’를 장착해 관심을 끌었다. MIRV는 미사일이 대기권에 재진입하면서 탄두 여러 개가 각기 개별적인 목표를 타격하는 것을 말한다. 미사일에 개암나무라는 의미의 오레시니크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개암은 도토리나 밤과 비슷한 견과류의 일종이다. 개암나무는 가지 끝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미사일에 핵과 재래식 탄두를 모두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책임자인 톰 카라코 연구원은 “러시아가 이 유형의 미사일을 사용한 것은 핵 위협을 확대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이는 최근 핵교리(핵무기 사용 규정) 개정과 이어지는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움직임은 미국 등 서방을 상대로 기만전술과 미치광이(Madman) 전술을 혼합해 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17일 우크라이나 측에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 표적을 타격하는 것을 허용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미국이 제공한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에 있는 군사 시설 등을 공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은 확전을 우려해 이를 거부해왔다.

에이태큼스 미사일은 속도 마하 3(악 3672㎞/h), 길이 4m, 직경 600㎜이며, 사거리는 300여㎞에 달한다. 미사일 탄두에 자탄 900여 개가 들어 있어 한 발만으로 축구장 3~4개 크기의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다. 게다가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 발사대에서 발사할 수 있어 이동 중인 목표물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덕분에 에이태큼스는 ‘게임 체인저’라는 말을 들어왔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군 참전에 따른 전쟁 확대 위험성이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 못지않게 심각하다고 판단해 바이든 대통령이 입장을 바꿨다고 분석했다. 퇴임을 두 달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북·러 연합군의 ‘쿠르스크 탈환’에 제동을 걸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이후 러-우 전쟁의 종전 협상을 중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조치는 우크라이나의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중대한 정책 전환이 이뤄졌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뺏긴 자국 영토와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러시아 영토를 교환하기를 희망하지만, 러시아가 쿠르스크를 탈환하면 교환할 러시아 영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지적했다.

“제3차 세계대전 불사” 협박

푸틴은 특유의 ‘미치광이 전술’로 대응하고 있다. 미치광이 전술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을 끝내려고 구사했던 방책을 말한다. 닉슨 전 대통령은 전 세계 주둔 미군에게 핵전쟁 경계령을 내린 다음 “나는 화가 나면 자제를 못 하고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소문을 내 북베트남(월맹)을 배후 지원하던 소련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인물이자 작은 일에도 발끈해 언제든지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미치광이로 포장했다. 푸틴 역시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지원을 펼치거나 자국을 제재할 때, 전황이 불리할 때 핵 카드를 꺼내 들고 위협하는 미치광이 전술을 구사해왔다.

실제로 푸틴은 11월 19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미사일 공격을 바이든 대통령이 허용한 것에 대응해 핵교리 개정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핵보유국이 아니더라도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한다면 이를 양국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해 두 나라를 모두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핵교리는 핵무기를 보유한 교전 당사국만 핵 공격 대상으로 삼았는데 개정된 핵교리는 핵 공격 대상을 확대했다. 둘째, 러시아와 동맹국에 대한 미사일·항공기·무인기(드론) 공격, 또는 이 공격이 대규모로 이뤄진다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있으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기존 핵교리는 러시아가 핵 공격을 받을 때, 전면전 상황에서 적의 지상군에 의해 모스크바가 위협을 받을 때 등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경우’에 한정해 핵 보복을 허용했지만 개정된 핵교리는 핵무기 사용 조건을 크게 완화했다. 러시아는 이번 개정으로 미사일과 드론 등을 이용한 공습만으로도 피해 규모가 크다고 판단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푸틴의 의도는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대통령처럼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푸틴의 심복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차기 미국 지도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 계속 기름을 끼얹는다면 이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며 “이는 정말로 제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을 열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의 ‘피노키오 겸 미치광이’ 행보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7호에 실렸습니다》

#푸틴#러시아#푸틴 미치광이 전술#푸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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