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보호무역주의 설계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2기 행정부 내각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3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폴리티코 등이 보도했다.
30년 이상 통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1기 당시 관세를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 기조를 수립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주도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협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더욱 강력한 관세와 보호무역 정책을 공약한 상황에서, 이를 주도했던 라이트하이저의 배제로 정책 이행의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도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는 차기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이나 상무장관과 같은 고위직으로 기용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스콧 베센트 키스퀘어 창업자를 재무장관에, 하워드 러트닉 캔터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를 상무장관으로 지명하며 월가 출신을 전면에 배치했다.
라이트하이저와 가까운 전직 관료는 폴리티코에 “그는 최소 15년 동안 트럼프의 신뢰받는 조언자로서 충성을 보여줬다”며 “이번에는 자신이 보상받을 차례라고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USTR 대표직을 다시 제안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라이트하이저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폴리티코는 라이트하이저의 배제가 “보호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중대한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1기 당시 친(親)기업 성향의 관료들 일부가 관세 인상에 반대했음에도 보호무역 정책이 추진된 데는 강경한 ‘관세 매파’인 라이트하이저가 풍부한 경험과 공격적인 성격으로 밀어붙인 덕이 크다는 평가다.
WSJ 역시 “라이트하이저는 무역법에 관해 백과사전 수준의 지식을 가진 노련한 협상가”라며 “그의 부재는 2기 행정부에서 트럼프의 야망을 좌절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당선인이 막연하게 내놓은 공약을 실천하려면 복잡한 무역 규제를 해석하고 실행할 만한 전문가가 필요하고, 예기치 못한 국내외 반발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이미 트럼프 당선인의 참모진에게 “현재 구상한 경제팀은 ‘보편 관세’를 실행할 의지가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달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는 10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결국 트럼프는 자유 무역주의자”라며 트럼프 당선인의 강경한 관세 공약은 다른 국가로부터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 전략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세를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부흥을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보는 라이트하이저와는 상반된다.
이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약한 것과 같은 강경한 관세 정책을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론 와이든 상원 재무위원장은 폴리티코에 “지명된 월가 인사들이 갑자기 관세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라이트하이저가 공식적인 직책 없이 외부에서 트럼프의 무역 정책에 조언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새 USTR 대표로 라이트하이저의 비서실장 출신인 제이미슨 그리어가 임명된 데도 그의 적극적인 추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상공회의소의 전직 부회장 마이런 브릴리언츠는 WSJ에 “직책이 없어도 라이트하이저의 경험과 조언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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