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위당국자 “尹 계엄 선포는 심한 오판”…한미동맹 균열 우려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5일 16시 05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14차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공동취재) 2024.10.16/뉴스1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14차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공동취재) 2024.10.16/뉴스1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 하루 뒤인 4일(현지 시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견고함이 확인됐다”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에 아무런 통보 없이 군대를 동원한 계엄에 나선 것에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내내 북한, 중국, 러시아 등에 대응하는 ‘민주주의 연대’ 구축을 위해 한국과의 공조를 강화해왔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로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 있으며 이것이 향후 한미동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캠벨·설리번·블링컨, 한 목소리 우려

이번 사태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판은 ‘아시아 차르(미 국무부에서 아시아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는 뜻)’로 불리는 캠벨 부장관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을 주도하며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및 워싱턴 선언 발표, 4개월 후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회담 등을 성사시키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올 4월에는 윤 대통령과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격이 있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4일 아스펜포럼이 주최한 행사에서 “최근 24시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예측할 수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윤 대통령이 심하게 오판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계엄 선포에 대해 “양당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며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계엄 조치가 심대하게 불법적인 과정이라고 분명히 했다”고 지적했다. 외교 당국자가 동맹국 정상에 대해 “오판했다”는 개인적인 평가를 공개하며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책사’ 설리번 보좌관도 같은 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이 극적인 발표(계엄)는 워싱턴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경종을 울렸다”며 “한국의 민주적 제도가 적절히 작동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국 민주주의는 강력하고 회복력이 있으며 앞으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한국 인사들과도 개인적으로 관여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벌어질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힌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이 과정이 평화롭게, 헌법과 법치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며칠 내 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韓, 탄핵 위기로 엄청난 대가 치를 것”

미국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들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건 이번 사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과 혼란이 미국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협력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을 부각해온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외교성과로 꼽힌다. 미 정계 일각에선 3국 협력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계엄 사태에 더 빨리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캠벨 부장관은 이날 ‘미국이 가까운 동맹국인 한국의 이번 사태에 (바이든 행정부 또한)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변명은 아니지만 탄핵에 대한 움직임, 대통령 부인에 대한 의문 등 최근 한국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중국을 겨냥해 한미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윤 대통령이 촉발한 정치 혼란은 북한, 중국과 맞서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앞둔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정치적 혼란이 향후 한국에 상당한 외교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앨런 김 CSIS 선임 연구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은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탄핵이 이뤄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면 한국과 진지하게 협력할 국가가 거의 없을 것이고, 이 잃어버린 시간이 한국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상계엄#윤석열 대통령#캠벨 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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