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의 인재요람 싱크탱크 ‘AFPI’… AFPI, 2020년 대선 패배 후 출범
정책 개발하고 모금 행사 여는 등… ‘트럼프 2기’ 목표로 물밑서 준비
“겸손-조용한 태도로 계획 실행”…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제쳐
법무장관 등 2기 행정부 진출까지… 미리 마련한 행정명령만 300개
“혁신 없는 트럼프 앵무새” 비판… 보수 진영 내 이념 분열 가능성도
《트럼프의 예비 백악관 ‘AFPI’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에 등용될 주요 인사를 배출한 ‘친(親)트럼프’ 보수 싱크탱크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FPI는 어떤 곳이고, 누가 몸담고 있는지 분석해 본다.》
“이 행사를 준비한 브룩 롤린스와 린다 맥마흔에게 정말 고맙다.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에도 감사하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대선 승리 뒤 처음으로 섰던 공개연설 무대는 ‘친(親)트럼프’ 보수 싱크탱크인 AFPI의 연례 행사였다.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AFPI의 ‘투 톱’ 설립자들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감사 인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속속 발표된 ‘트럼프 2기’ 백악관과 행정부의 주요 인선에는 두 사람을 포함한 ‘AFPI 출신’들이 대거 등장했다. 2020년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출범해 ‘정권 재창출’이란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려온 AFPI의 약진이 본격화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싱크탱크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정책 개발과 연구다. 하지만 AFPI는 지난 4년간 철저히 ‘트럼프의 비공식 선거사무소’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에도 독자적인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을지는 전망이 엇갈린다. 하지만 AFPI가 각종 정책을 공론화하고 인재풀을 준비하며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거침없는 질주’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트럼프의 ‘예비 백악관(White House in waiting)’이자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으로 불리는 AFPI를 참여 인물과 행보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 ‘트럼프 2기’ 목표 측근 의기투합
AFPI는 2020년 12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각각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 국장과 중소기업청장을 지냈던 브룩 롤린스와 린다 맥마흔, 그리고 억만장자 석유 사업가인 팀 던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보수 성향 비영리단체 ‘텍사스공공정책재단’ 회장이었던 롤린스가 재단의 이사로 함께 일했던 던에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토대를 마련할 국가 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한 게 출발이었다. 그리고 AFPI는 이듬해 4월 공식 출범했다.
AFPI는 이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친트럼프 성향을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를 그대로 쓰며 편향성을 숨기지 않았던 것.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당학회장)는 “현재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곳은 AFPI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말했다.
인적 구성 면면을 살펴봐도 상당수가 트럼프 1기 행정부 출신들이다. 호건 기들리 전 백악관 부대변인과 채드 울프 전 국토안보부 장관 대행, 더글러스 홀셔 전 백악관 정부간업무국장 등 수십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AFPI가 전직 트럼프 관료들의 ‘임시 착륙장(landing pad)’ 역할을 하는 곳이란 조롱도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내각을 나온 뒤 평판 악화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일 때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조직”이라고도 지적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AFPI는 정치 활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비영리단체를 표방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눈에 띄지 않게 트럼프 당선인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며 친위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대선 기간에 AFPI 이사들은 트럼프를 후원하는 슈퍼팩(PAC·정치활동위원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총 3100만 달러(약 439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AFPI 자매 조직 ‘아메리카 퍼스트 워크스(AFW)’는 트럼프 캠프의 경합주 선거 운동을 적극 도왔다. NYT는 AFPI가 해마다 마러라고에서 모금 행사를 열고 거액의 시설 사용료를 내는 등 “트럼프 당선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도 꾸준히 화답해 왔다. 그는 AFPI 출범 직후 성명을 통해 “우리 행정부의 역사적인 업적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 의제를 미래에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다. 백악관을 떠난 트럼프 당선인이 2022년 7월 처음으로 가진 워싱턴 공식 일정도 AFPI의 첫 정책 회의였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때까지는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기조연설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는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재선 도전 의지를 밝혔다.
● 몸 낮추고 트럼프 의중 읽어 성공
이번 대선을 앞두고 AFPI가 진행했던 가장 중요한 연구는 전임 행정부 관계자들을 1000회 이상 면담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모든 행정명령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의제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될 정책들의 우선순위 목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 공화당 로비스트를 인용해 “AFPI는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제시할 다양한 옵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마무리된 트럼프 2기 주요 인선에서도 AFPI 인사들은 여러 분야에 두루 포진하며 ‘인재 요람’ 역할을 톡톡히 했다. 투 톱인 롤린스 대표와 맥마흔 이사장이 각각 농림장관과 교육장관에 지명됐다. AFPI 소송센터와 법·정의센터를 이끌며 대선 경합주(州)에서 ‘부정 선거론’을 열성적으로 뒷받침해 온 팸 본디는 법무장관으로 지명됐다.
또 AFPI 미국안보센터 공동의장인 존 랫클리프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키스 켈로그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은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로 각각 지명됐다.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지명자도 10월 22일 AFPI 미국안보센터에 합류한 인물이다.
트럼프의 재선을 준비한 세력들 사이에서 AFPI가 처음부터 영향력이 컸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73년 설립돼 수십 년간 공화당 집권에 기여한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견제가 심했다. 두 싱크탱크가 2년 이상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AFPI가 최종 승기를 잡은 것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자세’ 덕분이었다.
2016년만 해도 완전히 ‘정치 이단아’였던 트럼프 당선인과 측근들은 기존 공화당 세력과 충돌이 많았다. 당시 인수인계 혼란상이 외부로도 노출되며 인수위원장이 중도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AFPI 지도부는 이런 혼란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물밑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FPI 미국아동센터 의장인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트럼프 1기 출신 고위 참모들은 머리를 숙이고 겸손한 태도로 정확하게 계획하고 실행했다”고 말했다.
반면 헤리티지재단은 정권 인수 계획을 담은 ‘프로젝트 2025’를 적극 홍보하는 등 대외 행보를 늘렸다가 되레 역풍을 맞았다. 민주당 측이 ‘프로젝트 2025’의 내용이 극단적이라고 공격하며 여론도 돌아섰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캠프도 7월 공개적으로 이들과 선을 그었다. AFPI와 해리티지재단 간 경쟁이 AFPI의 완승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트럼프 2기 인수 과정은 충성파들의 체계적인 지원을 디딤돌 삼아, 훨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1기 중남미 특사와 주미개발은행 총재를 지냈던 마우리시오 클래버카론은 “측근들이 트럼프의 의중과 업무 방식을 꿰고 있기 때문”이라며 “차기 정권에선 대통령이 내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각이 대통령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 더 강한 트럼프주의… “앵무새” 지적도
AFPI는 첫 번째 임기보다 한층 강한 ‘트럼프주의(Trumpism)’를 곧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 옵션들도 마련했다. 롤린스는 대선을 반년 이상 앞둔 4월부터 이미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할 경우 곧바로 서명할 약 300개의 행정명령 초안을 작성했다고 언급해 왔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AFPI는 지난달 트럼프 당선인의 재선이 확정된 뒤 주요 공화당 로비스트들에게 “트럼프 2기의 첫 200일간 연방 부처에 제안할 계획과 잠재적 조치들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정책 노선은 정책집 ‘미국 우선 어젠다(The America First Agenda)’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핵심 과제를 경제, 의료, 교육, 안보 등 총 10개 분야로 나눠 제시한 정책집은 마지막 항목으로 ‘적폐청산(Drain the Swamp)’을 다룬다.
1980년대 “말라리아를 퇴치하려면 늪에 물을 빼서 모기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는 개념에서 비롯된 이 비유는 워싱턴 정가에서 이익단체와 로비스트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AFPI는 연방정부 공무원의 해고를 유연화하고, 정부 기관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1기 때 일부 공무원들이 반기를 든 탓에 국정 동력이 약화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트럼프 2기에서는 공무원들이 협조를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방지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AFPI의 정책들이 사실상 트럼프 당선인이 2016년 대선 때부터 주장해 왔던 내용과 차이가 없다는 평가도 많다. 새롭거나 혁신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는 것. 가령 △미국에 유리하게 국제 무역체제 개편 △멕시코 국경 장벽을 완성 △트랜스젠더 권리 제한 같은 정책 제안은 트럼프 당선인이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던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 정책집이 “대선 전 이미 트럼프 캠프에서 채택된 내용”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내각에 속속 들어앉은 AFPI 출신들이 향후 얼마나 큰 영향력을 확보하고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역사가 짧은 싱크탱크의 특성상 활동 반경이 제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싱크탱크와 달리 AFPI는 ‘트럼프’라는 인물을 추종하는 세력이 만든 조직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서 교수도 “AFPI 역할은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어젠다를 홍보하는 수준이었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뒤에도 이 기관에 의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반면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AFPI가 전통적인 대규모 싱크탱크들보다 전반적인 역량은 떨어질 수 있지만, 특정한 상황에서의 정책 제안이 필요할 땐 더 기민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 AFPI가 ‘비(非)AFPI’ 출신들과 가치관 충돌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자유시장주의 등을 강조하는 ‘정통 보수주의자’ 롤린스 대표와 노동계층을 옹호하는 ‘포퓰리스트’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을 동시에 기용했다”며 “대선 국면에선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보수 진영의 이념 분열이 2기 행정부 출범 뒤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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