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마러라고 수색한 레이 국장… “내가 물러나는 게 FBI에 옳은 일”
‘보복’ 의지 트럼프 “美법치 회복”
새 국장 파텔, 본부 축소 등 예고… “FBI 정치중립 무력화 우려” 목소리
2017년 8월 취임한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58)이 11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의 임기는 2027년 8월까지로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0일 자신의 핵심 측근인 ‘충성파’ 캐시 파텔 전 국방장관 대행 비서실장을 차기 FBI 국장에 기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레이 국장이 남은 임기를 지키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레이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집권 1기에 직접 뽑은 인물이다. 연방 검찰은 트럼프 당선인이 2021년 1월 퇴임 당시 백악관 기밀 자료를 사저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로 불법 반출했다는 혐의 등을 포함해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4건의 형사 기소를 단행했다. 이와 관련해 레이 국장이 자료 불법 반출에 관한 수사를 위해 2022년 8월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하면서 트럼프 당선인의 눈 밖에 났다.
미국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FBI가 중립적,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1976년부터 국장 임기를 10년으로 보장해 왔다. 다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해임하면 교체가 가능하나, 해임이 가능한 상황이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교체를 단행하는 대통령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는 구조다.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이 발탁한 사람의 임기도 지켜주지 않는 데다 4건의 형사 기소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보복 의사도 드러낸 만큼 FBI의 정치 중립성 논란, 정치 보복 우려 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1기 때도 FBI 국장 경질
CNN 등에 따르면 레이 국장은 이날 워싱턴 FBI 본부에서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내년 1월 현 행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만 일하고 물러나는 것이 FBI에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기 사임은 FBI를 더 깊은 싸움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도 당시 FBI 수장의 임기를 지켜주지 않았다. 당시 수장은 제임스 코미 전 국장(2013년 9월∼2017년 5월 재직). 트럼프 당선인은 코미 전 국장이 자신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임기가 6년 넘게 남은 그를 트위터(현 X)로 해임했다. 그 후임자로 발탁한 레이 국장 역시 임기를 지켜주지 않은 것이다.
FBI는 테러, 부패, 사이버 범죄, 화이트칼라 범죄 등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권을 가진다. FBI 국장 또한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녀야 한다. 10년 임기를 법으로 정한 것 또한 도청, 사찰 등으로 확보한 정보를 무기로 미 사회를 쥐락펴락했던 존 에드거 후버 전 국장(1935∼1972년 재임) 같은 막후 권력자가 나타나는 것을 막고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런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파텔 FBI 국장 지명자, 칼바람 예고
트럼프 당선인은 오래전부터 레이 국장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8일 NBC뉴스 인터뷰에서 ‘레이 국장을 해고하겠느냐’는 질문에 “그가 마러라고 리조트에 침입했다. 그가 한 일은 매우 불만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날 레이 국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진 후에도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사법기관의 무기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날”이라며 “미국의 법치를 회복해 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인도계인 파텔 지명자 또한 11일 성명을 내고 “이임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란다”며 “취임 첫날부터 미국인들을 위해 봉사할 준비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레이 국장을 포함해 트럼프 당선인을 수사한 인물들에 대한 보복, FBI 본부 축소 등 대대적인 칼바람을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해 온 충성파로 애리조나주의 TV 앵커 출신인 캐리 레이크를 ‘미국의 소리(VOA)’ 방송 대표로 지명했다. VOA는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을 받지만 독립적인 편집권을 보장받아 왔다. 이 같은 흐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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