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리더십 공백 속 손발 묶인 韓외교
“최소 반년 투명국가 취급받을수도”… 美와 한반도 정책 공조시기 놓쳐
전문가, 트럼프측 전방위 공략 조언… “싱크탱크-보수 언론 적극 접촉을”
“아무것도 진전되는 게 없다. 그 누구도 지침을 주지 않는다.”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탄핵 정국으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각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줄을 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계엄 후폭풍에 빠진 한국은 리더십 공백 속에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새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최소 6개월간 국제사회가 한국을 ‘투명 국가’ 취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기존 트럼프 당선인 측과의 소통은 사실상 취임 후 빠른 시일 내 정상 회동을 목표로 진행됐다”면서 “대통령 직무 정지에 따른 권한대행 체제에서 기존과 같은 목표를 갖고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전현직 외교안보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의 ‘코리아 패싱’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의회, 친(親)트럼프 성향의 싱크탱크와 언론, 트럼프 당선인이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등을 전방위로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과 반도체 같은 한국의 산업 역량,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 등을 강조해 트럼프 당선인에게 “한국은 중요한 나라”란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취지다.
● ‘올스톱’ 된 외교… 한미 산업협력도 위기
무엇보다 한국의 ‘리더십 공백기’가 내년 1월 20일 시작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겹치면서 한미가 각종 정책에서 초기에 공조할 기회를 놓쳤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2기 인사들에게 한반도 관련 정보와 정책 노선을 사전에 입력시킬 수 없게 됐다”며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이를 시도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한국이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가 출신으로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군함 건조·유지·보수를 포함한 조선업과 반도체 등 한국이 강점을 보유한 산업의 양국 협력 방안을 먼저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국이 관심을 가지는 조선 등의 협상 패키지를 마련하려 했는데 (탄핵 정국으로) 어렵게 됐다”고 했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불안정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약 2년 만에 만났다. 내년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014년 방한했던 시 주석이 1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을 것이란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 연루 간첩 사건을 거론하고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다시 냉각될 조짐이다. 윤 대통령이 10월 주중국 대사로 지명한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부임이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일본과의 외교도 어려움에 처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한국을 방문하려 했지만 계엄 사태로 취소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만약 탄핵이 인용돼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미국이 아닌 중국 쪽으로 기운다면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경주가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확정된 뒤 반년 가까이 정부의 준비 과정이 답보 상태였던 가운데, 탄핵 국면으로 더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APEC 준비 상황이 지난달 말에야 처음 윤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싱크탱크-SNS-이너서클 등 전방위 공략 필요”
전문가들은 리더십 공백과 무관하게 적극적으로 트럼프 당선인 측과의 접점을 확보하고 한국 입장을 전달하라고 주문했다.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는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나 헤리티지연구소 같은 보수 성향 싱크탱크, 미국 의회 등과 적극 접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주류 언론을 불신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고려해 당선인이 만든 ‘트루스소셜’에 한국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친트럼프 언론인 폭스뉴스와의 접촉을 늘리라고도 했다.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주요 기업들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의 영적 조언자’로 알려진 폴라 화이트 목사 등 ‘이너서클’과 접촉하려고 적극 노력해 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개인적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감안할 때 ‘코리아 패싱’ 위험을 방지하려면 인적 채널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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