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ech와 함께 안전운전] 동아일보-채널A 2024 교통안전 캠페인
〈20·끝〉 스위스 미니버스 프로젝트
교외 교통사각에 자율버스 투입… 앱에 입력한 주소서 승하차 시켜줘
AI가 예약패턴 학습해 미리 배차… 시범주행 2년간 인명사고 0건
“올해로 80세인데 자율주행버스 덕분에 교외에 있는 친구들과도 편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시 근교를 운행하는 자율주행버스가 도입되자 대중교통운영사 TPG의 예룬 뵈커르스 자율주행혁신 및 스마트모빌리티 팀장은 주민에게 이 같은 감사 인사를 받았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제네바 근교 벨이데에서 만난 뵈커르스 팀장은 “지방 도시의 교통취약 계층에게 이동권은 ‘장보기’ ‘통근’ ‘타인과의 만남’ 등 삶의 모든 것에 직결된다”며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으면 도시로 이탈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한국은 23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특히 전남(27.2%)과 경북(26.0%) 등 지방의 고령화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유럽의 선진 도시들도 지방의 교통 소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령화로 운전자를 찾기 어려운 데다 인구 감소로 대중교통 사업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어 무턱대고 노선을 신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도로의 ‘99%’ 구석구석 누비는 자율주행버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유럽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자율주행버스’다. 유럽연합(EU)과 스위스는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해 교통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2018년부터 스위스, 프랑스, 덴마크, 룩셈부르크,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 내 교통소외 지역 최소 10곳에 자율주행버스를 시범 도입하는 ‘아베뉴(AVENUE)·얼티모(ULTIMO)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제네바 도심에서 동쪽으로 5km 정도 떨어져 있는 벨이데는 요양원과 노인병원 등이 밀집한 지역이다. 제네바 중앙역에서 일반 버스를 타고 이 지역에 가기 위해선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되는 직통 버스를 기다리거나, 2번 이상 환승해야 할 만큼 교통 인프라가 열악했다. 벨이데 내에서도 차량으로 9분이면 이동할 거리가 일반 버스로는 40분가량 걸렸다. 근교 마을이라 건물들이 분산돼 있어 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7월 이곳에 고정된 노선도, 시간표도 없는 전기 자율주행버스 3대가 도입된 배경이다. ‘TPG 플렉스’ 앱을 켜고 지역 내에서 탑승 및 하차할 주소만 입력하면 자율주행버스가 지정한 곳에 승하차시켜 주는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다. 사실상 콜택시처럼 운영돼 동시 탑승객이 많지 않고, 좁은 골목이 많은 특성에 맞춰 11인승 미니 버스로 운영된다.
이 지역은 교통취약 계층이 많아 애당초 차량 최고 주행속도가 시속 30km로 제한돼 있다. 덕분에 자율주행버스 또한 카메라와 레이저를 발사해 장애물을 피하는 기술인 라이다(LIDAR)로 사람 등을 감지하면 감속하거나 제동 후 재출발하는 등 안전성을 충분히 지키며 주행했다. 2년이 넘는 시범주행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나지 않았다.
뵈커르스 팀장은 “지역 사전조사와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400㎡ 규모의 시험주행 부지에 가상 정류장 70곳을 설정해둬 골목을 누비는 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제네바 도심으로 연결되는 기존 버스 정류장 5곳을 ‘거점 정류장’으로 연계해 ‘라스트 마일(Last mile)’ 교통수단으로도 활용했다. 그 결과 이 버스는 실제 벨이데 지역 내 도로의 99%를 운행할 수 있게 됐다. 버스와 지하철이 도처에 널린 도심에서도 보기 드문 수준의 접근성이다.
● AI가 반복적 예약 패턴 학습해 미리 대기
자율주행버스는 인공지능(AI) 기술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AI가 승객의 예약 패턴을 학습해 빠르게 차량을 보낸다. 가령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병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예약하는 승객이 있으면 이를 학습한 AI가 예약이 이뤄지기도 전에 빈 버스를 미리 보내놓는 식이다. 등하교, 통근 시간 등 수요가 몰릴 시간대에도 버스를 선제적으로 배치한다. 승객을 태우고 이동하는 도중 다른 예약이 접수돼 픽업을 해야 하면 AI가 가장 빠른 동선을 찾는다. 배터리 소진을 예상해 적절한 시점에 차량을 충전소로 보내기도 한다.
AI는 승객들의 안전도 책임진다. 버스 내·외부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관리자가 앉아 있는 원격 관제실 모니터로 영상을 실시간 전송하는데, AI도 상황을 관찰하며 비상시 관제실에 경고 알람을 울린다.
벨이데 지역에서의 시범주행 경험을 토대로 스위스 정부와 EU는 내년부터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제네바 서남부 근교 지역에 자율주행버스를 추가로 도입하는 ‘얼티모 프로젝트’의 실증사업을 시작한다. 주행 면적만 110k㎡로 아베뉴 프로젝트 시험 면적의 약 275배에 달한다.
앞으로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화물 운송도 시도할 계획이다. 승객이 없는 시간대에는 인건비가 추가로 들지 않는 자율주행버스가 우체국처럼 택배를 배송하게 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취지다. 경제적 측면 외에 화물 운전기사가 부족한 농촌 현실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고령화로 대중교통 사업의 적자가 불어나고 있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위스 제네바주 역시 5년마다 정부로부터 대중교통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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