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셜미디어 규제 논란… 프랑스 학부모들, 틱톡 단체 소송
‘극단 선택’ ‘섭식 장애’ 유발 주장… 9월엔 EU가 벌금 5000억 원 부과
美, 12개 주 합심해 소송 제기
“도파민 유도 알고리즘 활용… 청소년 정신 건강에 악영향”
호주-유럽에선 연령 제한에 초점
전문가들 “나이 규제는 임시방편… 유해 콘텐츠 필터링해야 효과”
《‘청소년 SNS 이용제한’ 전세계 시끌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각종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요국이 앞다퉈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다만, 단기 규제책보다 유해 콘텐츠 생산을 막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 딸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피해자였어요.”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 지역에 사는 제레미 파르키에(44)와 델핀 다퓌(47)의 딸 샤를리즈 다퓌 파르키에는 평범한 15세 소녀였다. 해리포터를 좋아하고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 취미였다. 길을 걸을 땐 혹시라도 개미를 밟을까 봐 걱정하던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샤를리즈가 사립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무언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파르키에 씨는 “어느 날 한밤중에 샤를리즈가 반 친구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정신건강이 갈수록 악화되던 샤를리즈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차츰 나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갈수록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22일(현지 시간) 외출을 나갔던 파르키에 씨가 샤를리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질 않았다. 심상찮은 느낌을 받은 파르키에 씨가 급히 귀가해 방문을 열었을 땐, 이미 샤를리즈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후 파르키에씨 부부가 알게 된 사실은 더욱 큰 충격이었다. 샤를리즈 친구들은 부부에게 “사고 전날, 샤를리즈가 극단 선택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틱톡에 공유했다”고 전했다. 부부는 딸이 방 안에서 하루 몇 시간씩 틱톡에 빠져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퓌 씨는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딸이 소셜미디어의 나쁜 콘텐츠에 중독되는 걸 막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샤를리즈의 사례가 아니어도 이미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최근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파르키에 씨 부부 역시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섭식 장애를 겪는 아이들의 부모들과 함께 지난달 틱톡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로 최근 여러 나라 정부가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전면 혹은 일부 금지하는 법안을 잇달아 제정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기업들 역시 자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같은 규제 움직임의 실효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단순히 청소년의 접근을 막는다고 이미 만연한 소셜미디어 유해 콘텐츠가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도파민 유도 알고리즘’이 문제
파르키에 씨 부부가 틱톡을 상대로 프랑스 법원에 제기한 소송엔 7가족이 참여했다. 자녀 2명은 극단 선택을 했고, 4명은 자해를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섭식 장애를 겪고 있다. 가족 측인 로르 부트롱 마르미옹 변호사는 “유럽에서 소셜미디어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소송이 이뤄진 건 처음”이라며 “틱톡은 청소년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기업으로서 (알고리즘 등) 자사 상품의 단점에 대해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은 9월 틱톡에 약 3억7000만 달러(약 5416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전례가 있다. 아동의 개인정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다. 틱톡의 경우 13∼17세 청소년 계정은 기본적으로 공개되도록 설정돼 있는데, 이는 악용 시 청소년 개인정보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도 여겨진다. 영국 역시 4월 EU와 같은 이유로 틱톡에 159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와 켄터키, 뉴저지주 등에서 초당파적 주 법무장관 연합이 꾸려져 2022년 3월부터 틱톡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그 결과, 미 12개 주와 컬럼비아 특별구가 올 10월 틱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틱톡이 ‘쇼트폼’ 콘텐츠를 과도하게 사용하도록 조장하며, 이런 콘텐츠가 청소년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 검찰은 틱톡이 끊임없이 다음 동영상 시청을 유도하는 등 중독성을 높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선 1억7000만 명가량이 틱톡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컬럼비아 특별구는 소장에서 틱톡 알고리즘을 ‘도파민 유도 알고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소장은 “틱톡 디자인은 인간이 즐거움을 느끼도록 돕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카메라 필터를 통해 촬영자 얼굴을 백인이나 유럽인 등에 가깝게 꾸며 고정관념을 강화시킴으로써 외모에 대한 자기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 역시 지난해 10월 미국 33개 주로부터 고소당했다. 주 정부들은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을 유해 콘텐츠로 밀어넣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또 부모 동의 없이 청소년의 개인 데이터를 불법적으로 수집했다고도 판단했다. 올 8월엔 미 연방정부 차원의 소송도 제기됐다.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는 틱톡이 부모 동의 없이 13세 미만 청소년의 개인정보를 수집, 사용 또는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틱톡 측은 이에 대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많은 부분이 부정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우리는 청소년 사용자의 개인정보 삭제, 이용 시간 제한 및 16세 미만 사용자의 기본 개인정보 보호 설정같이 강력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타 역시 “청소년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 호주, 유럽 등에선 연령 중심 규제
소셜미디어를 상대로 각종 소송이 이어지면서, 일부 국가에선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도 제정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돼도 각 기업들의 소송 등에 부딪혀 실행까지 시간이 걸릴 순 있지만, 소셜미디어 이용 규제 움직임엔 갈수록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호주 의회는 지난달 28일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모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 등을 감안하지 않고 소셜미디어 이용 자체를 금지시킨 건 세계에서 호주가 처음이다. 법안에 따르면 16세 미만 청소년은 소셜미디어 계정 생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앞으로 호주에선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사용자 연령을 확인하고 16세 미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5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안은 2026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미 플로리다주는 올 3월 14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14, 15세도 계정을 생성하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 유타주는 지난해 3월 18세 미만 청소년은 소셜미디어 계정 생성을 위해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의 경우엔 2023년 15세 미만 청소년은 부모 동의하에 소셜미디어 계정을 생성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아직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 시행되진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11세 미만 청소년의 휴대전화 소지 금지 등도 검토되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동유럽의 알바니아다. 내년 1월부터 남녀노소 모두 틱톡 접속을 1년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지난달 14세 남학생이 친구를 흉기로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말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틱톡에 ‘살인을 지지한다’는 영상이 쏟아지자 당국은 아예 자국에서 접속을 금지하는 강경책으로 맞섰다.
전방위적 규제 움직임 속에서 소셜미디어들도 자체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틱톡, 스냅챗 등은 최소 13세 이상이어야 계정을 생성할 수 있도록 이용 규정을 바꿨다. 또 자녀 계정을 부모 계정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해 청소년들에게 노출되는 게시물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유해 콘텐츠 필터링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소셜미디어 연령 규제나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자체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호주 멜버른 RMIT대 리사 기븐 교수(정보과학 전공)는 뉴욕타임스(NYT)에 “가장 효과적인 규제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유해 콘텐츠를 더 잘 관리하고 제거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령 제한 등에 집중한 규제는 임시방편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다.
연령 제한 규제는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가상사설망(VPN) 등으로 우회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며 “이런 규제는 그냥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소셜미디어 규제 자체가 표현의 자유 침해가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유해 콘텐츠를 사전에 걸러내는 방식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는 “법적 규제보다 유해 콘텐츠 필터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며 “관련 법과 정책 역시 이를 이행하지 않는 플랫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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