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주한미군 갈등-김일성 면담…한반도와 인연 깊었던 카터 전 美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0일 08시 00분


29일(현지 시간) 향년 100세로 별세한 미국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을 세 차례나 방문하고 한반도 핵 위기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 한국과의 인연이 깊었던 인물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 39대 대통령(1977년 1월~1981년 1월) 재임 시절 도덕성과 인권을 강조하는 외교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 상황을 비판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연히 당시 한국 정부와도 갈등을 겪었다. 실제로 카터 전 대통령은 1978년까지 주한미군 3400여명을 감축했지만 완전 철군 계획은 포기했다.

특히 1979년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중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유신체제에 반대한 재야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에는 한동안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 사태가 벌어지자 ‘해결사 역할’에 나섰다. 그는 이듬해 미국의 전직 대통령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요구에 반발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등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다. 19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은 직접 평양에서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과 면담하며 국면 전환의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다.

그는 김 주석과의 면담에서 유엔이 대북 제재를 중단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동결한다는 데 합의한다. 이는 같은 해 10월 21일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가 체결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그해 7월 말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김 주석이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가지기로 한 것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7월 8일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이후에도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인 인질 문제 해결과 비핵화 회담 재개를 위해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했다. 그러나 두 번 모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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