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주한미군 철수 갈등… 김일성과 평양 담판, 美 북폭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31일 03시 00분


[‘美 최고 전직대통령’ 지미 카터 별세]
한반도와 깊은 인연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김일성 북한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출처 카터센터
1994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김일성 북한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출처 카터센터
29일(현지 시간) 향년 100세로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1977년 1월∼1981년 1월) 당시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문제 삼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해 한미동맹을 흔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퇴임 뒤 북한을 세 차례나 방문했고, 특히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도 검토했던 1993∼1994년 한반도 핵 위기 때는 해결사를 자처했다. 카터 전 대통령을 두고 ‘한국과의 인연이 깊었던 인물’, ‘퇴임 뒤 한국과의 관계가 좋아진 인물’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했다. 그는 1977년 취임 직후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를 선언하며 5년에 걸쳐 병력 전체를 철수한다는 뜻을 밝혔다. 추후 기밀 해제된 대화록을 통해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 중 카터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치열한 언쟁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퇴임 뒤에는 한동안 한국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1993년 1차 북핵 위기 사태가 터졌고, 이듬해 카터 전 대통령은 평화 사절로 나서 미국 전직 대통령 중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요구에 반발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19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이 직접 평양에서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과 면담하며 국면 전환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했다. 그와 김 주석은 유엔이 대북 제재를 중단하면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는 그해 10월 21일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의 토대가 됐다.

#지미 카터 별세#주한미군 철수 갈등#김일성 평양 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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