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맞는 한국, 북핵-방위비 등 ‘클린 슬레이트’서 시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일 03시 00분


[글로벌 석학 인터뷰] 〈1〉 리처드 하스 美 외교협회 명예회장
트럼프는 국방-무역 기여도 중시
韓, 기여도 높여 갈등-마찰 피하고… 美에 계엄 영향 없다는 것 보여줘야
北, 결코 핵무기 포기하지 않을 것… 비핵화 단어 잊고 현실적 방안 찾길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를 20년간 이끈 리처드 하스 CFR 명예회장은 한국이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와 잘 지내려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관심사인 국방, 무역 분야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의 정상 외교를 재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DB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를 20년간 이끈 리처드 하스 CFR 명예회장은 한국이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와 잘 지내려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관심사인 국방, 무역 분야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의 정상 외교를 재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DB
“한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와 ‘백지 상태(clean slate)’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경제, 방위비, 북한 및 중국 대응 등에서 겪었던 여러 갈등과 마찰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트럼프 당선인이 중시하는 국방, 무역 관계에서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봐야 합니다.”

2003년부터 20년간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의 최장수 회장을 지낸 리처드 하스 CFR 명예회장(74)이 지난해 12월 말 동아일보와의 화상 신년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조언했다. CFR은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FA)’를 발간하고 있다. 1921년 창립 후 역대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해 왔다.

하스 명예회장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비핵화의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 외교 재개를 강조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복귀한다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전망하나.

“트럼프 당선인이 중요한 기회를 잡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중재할 기회를 가졌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미국과 이란의 평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커졌다. 전 세계가 ‘기회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큰 성과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성과를 낸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정의할 단어가 ‘놀라움(surprising)’이 될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거래’에 기반했다. 그는 동맹과 적국을 비슷하게 대했다. 동맹엔 방위비 분담금 증액, 관세 부과 등 교역 압박을 위해 거래를 강조했고 적대국과도 지정학적 의제 등을 놓고 협상했다. 다만 동맹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국제질서 측면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당선인의 귀환보다 러시아와 중국이 더 큰 위협일 수 있다. 이들은 세계가 운영돼야 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 등과 명확히 다른 견해를 보인다. 주권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북한의 러시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주요 강대국이 국제 사회에서 걸맞은 책임을 다하고, 협력하는 것이 세계 전체 이익에 부합한다.”

―계엄 사태 등으로 한국의 정치 혼란이 심각하다. 이런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모든 채널을 동원해 ‘계엄과 무관하게 한국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미국 측에 적극 알려야 한다. 다만 한미 동맹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양자동맹 중 하나이고 계엄 사태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칠 이유도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양국이 방위비 분담금,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 중국과의 관계 설정 등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그러나 계속된 북한의 위협,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중국의 도전에 직면한 한반도 일대의 역내 상황이 그대로인 만큼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을 공동으로 견제하기 위한 양국의 협력 여지가 크다.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첫발을 잘 떼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같은 한국의 국방 기여도, 교역 분야에 대한 기여도를 특히 눈여겨볼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과의 정상 외교 재개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많은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제재를 가했고 김 위원장과 편지도 주고받았다. 어떤 것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미 카터 전 행정부의 해럴드 브라운 전 국방장관은 냉전 시절 옛 소련과 군비 경쟁을 하면서 ‘미국이 미사일을 만들면 소련도 미사일을 만들고, 미국이 미사일을 만들지 않아도 소련은 만든다’고 자조했다.

북한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도 똑같다.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면 북한은 더 다루기 어렵게 행동한다. 미사일을 만들고 더 많은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개발한다. 미국이 북한에 러브레터를 보내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과거 북한에 대한 외교적 관여를 강조했다. 왜 생각이 바뀌었나.

“과거에는 북한의 주요 외부 지원자가 중국이었지만 지금은 북한이 러시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교를 통해 북한을 설득시키고 변화시키는 게 더 어려워졌다. 또한 현재 북한의 외교안보 정책은 외부 세계가 아닌 (김 위원장의 장기 집권 추구 같은) 내부의 정치사회적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 편지를 통한 인적 외교를 재개할지, 다른 접근을 시도할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북핵을 두고 ‘문제(problem)’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문제라는 말은 ‘해결책(solution)’이 있을 때 쓰는 것이다. 현재는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며 비핵화 협상이 성공할 거라고도 보지 않는다. 비핵화라는 단어를 잊고 북한을 제어할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일지 한미 양국이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특히 북한이 최근 한국의 혼란한 상황을 기회로 여기지 않도록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북한의 군사 동향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의 민주주의가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 계엄 선포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의 해외 도피와 함께 지난해 접한 뉴스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계엄의 신속한 저지 등 이후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모 대학에 강연을 하러 갔는데 대규모 학생 시위가 있었고 최루탄 가스가 가득했다. 그때와 완전히 다른 지금의 한국을 봐라. 단 몇십 년 만에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트럼프 당선인의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그의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바람에 미국 역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었다. 미국 민주주의도 완벽하지 않다.”

―계엄 여파로 국제사회 내 한국의 위상이 손상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현재의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느 면에서도 주요 8개국(G8)에 입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나라다.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하면 한국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질 것이고 G8 가입 또한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전 세계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력을 목격한 나 또한 이전보다 한국 국민에게 더 큰 존경심을 갖게 됐다. 또 계엄 선포를 둘러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무관하게 그가 한일·한미일 관계를 발전시킨 외교적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으로 보나.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떤 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최근 10년간 계속 악화됐다. 안타깝게도 양국 관계가 다시 호시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두 나라가 계속 대립하고 갈등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외교안보 정책은 때로는 ‘성취’보다 ‘무엇을 피할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다. 미중 관계의 현실적인 목표는 양국이 서로의 차이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남중국해와 대만 일대에서의 충돌을 피하고 상호 교역을 중시하면서도 서로의 중대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양국 관계의 야심찬 도전이자 목표가 될 것이다.”

―단일 패권국이라는 미국의 역할과 위상이 쇠퇴하면서 세계 곳곳의 분쟁 또한 증가했다는 지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80년간 세계는 ‘세계 경찰’이라는 미국의 역할 덕에 질서 유지라는 큰 혜택을 얻었다. 다만 미국 내에서조차 미국이 계속 이 역할을 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많은 미국인과 양당 정치인들까지 ‘세계에서의 역할을 줄이고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 우려스럽다. 미국 없이 세계 질서가 잘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리처드 하스
△1951년 미국 뉴욕 출생

△오벌린대 학사, 영국 옥스퍼드대 석박사

△1979년 미 국방부 근무

△1981∼1985년 미 국무부 근무

△1989∼1993년 조지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특별보좌관 및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남아시아 선임보좌관

△2001∼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및 국무장관 수석 고문

△2003∼2023년 미 외교협회(CFR) 회장

△현 CFR 명예회장

저서: ‘미국 외교정책의 대반격’(2005년), ‘혼돈의 세계’(2017년), ‘의무장전: 선량한 시민의 열 가지 습관’(2023년) 등

#트럼프 2기#한국#리처드 하스#클린 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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