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톰’에 날아간 트뤼도… 관세 압박 못버티고 결국 사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8일 03시 00분


[눈앞에 닥친 트럼프 2기]
親이민 정책-고물가 불만 폭증 속… 美 고관세에 저자세 외교 결정타
부친 이은 총리직 9년만에 물러나… 트럼프 “美의 51번째 주” 또 조롱
외신 “다른 우방국들도 위험” 지적

2015년 11월부터 집권 중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 시간) 수도 오타와에서 집권 자유당 대표 겸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새 당 대표와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만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오타와=AP 뉴시스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며 9년 넘게 캐나다를 이끌어 온 쥐스탱 트뤼도 총리(54)가 6일(현지 시간)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진 데다 친(親)이민 정책에 대한 국민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고관세 부과 방침이 결정타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저자세 외교를 펼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는 관세 압박 등 이른바 ‘트럼프 스톰’으로 타격을 입고 물러나는 첫 국가정상이란 불명예도 안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트뤼도 총리의 사임 소식을 접한 뒤 트루스소셜을 통해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되면 관세는 없어지고, 세금도 크게 인하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민자 급증으로 실업률, 집값 ↑

트뤼도 총리는 새해 연휴가 끝난 이날 관저 앞 야외에서 기자들에게 “2015년부터 저는 이 나라와 여러분을 위해 싸워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는 이 나라를, 이 나라의 국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서도 “현실은 우린 최선을 다했지만 의회가 몇 달째 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리셋할 시간”이라며 사임을 공식화했다.

17년간 캐나다 총리를 지낸 피에르 트뤼도(1919∼2000)의 장남으로, 명문 맥길대를 나온 트뤼도 총리는 호감형 외모에 수려한 언변을 앞세워 2015년 11월 당시 44세로 총리에 취임했다. 캐나다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젊은 정치인의 기수’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공급망 위기 등으로 촉발된 경제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증폭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년 50만 명의 신규 이민자를 수용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던 그의 이민 정책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민자 급증으로 실업률과 집값이 뛰고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은 하락했던 것. 국제 통계사이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캐나다 평균 주택 가격은 2018년 약 49만 캐나다달러에서 2022년 약 70만4000캐나다달러로 급격히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수치 역시 2020년 0.72%에서 2022년 6.8%로 크게 증가했다.

이로 인해 트뤼도 총리와 당의 지지율은 동반 추락했다. 현재 그가 속한 집권 자유당의 지지율은 21%로 보수당(4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 귀환한 트럼프, 트뤼도에 결정타

이처럼 어려움을 겪던 트뤼도 총리에게 ‘트럼프의 귀환’은 결정타가 됐다. 앞서 두 사람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을 두고 껄끄러운 관계였다. 2017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트뤼도 총리는 보란 듯 포용적 이민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물가 등 국내 경제위기 앞에서 트뤼도 총리의 당당함은 자취를 감췄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 캐나다 등에 25%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사저인 마러라고 리조트까지 찾아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악수(惡手)가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뤼도 총리와의 회동 직후 “위대한 캐나다주(州) 주지사인 트뤼도와 식사해 기뻤다”고 조롱했다. 이에 대해 트뤼도의 핵심 측근이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지나치게 저자세”라며 전격 사퇴했다. 이어 정책 연합을 맺은 신민주당이 정부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면서 트뤼도 총리는 사면초가에 내몰렸다.

트럼프 당선인이 고관세로 트뤼도 총리를 흔든 건 통상, 안보 전략상 상대국을 압박하기 위한 특유의 협상 전략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내던져 상대를 흔든 뒤 속내를 파악하려는 것”이라며 “약한 고리를 무너뜨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향후 트럼프 당선인이 다른 우방국들로 시선을 돌려 고관세를 압박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CNN은 트럼프 당선인이 향후 한국, 프랑스, 독일처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동맹국에 특히 위협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한편 트뤼도 총리의 후임으로는 프릴랜드 전 장관, 도미닉 르블랑 재무장관, 멜라니 졸리 외교장관, 마크 카니 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등이 거론된다.

#트럼프 스톰#트럼프 2기 행정부#캐나다#쥐스탱 트뤼도 총리#고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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