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팩트 체킹(fact-checking·사실확인)’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7일(현지 시간) 밝혔다. 보수 진영이 “좌편향된 검열”이라며 비판해 온 서비스를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포기한 것이다.
저커버그 “표현의 자유 근본정신으로 돌아갈 때”
저커버그 CEO는 이날 공개한 영상에서 “지금은 ‘표현의 자유’라는 우리의 근본으로 돌아갈 때”라며 “미국에서 팩트체커를 없애고 엑스(X·옛 트위터)의 ‘커뮤니티 노트’와 유사한 것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자사와 일해온 팩트체커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됐고, 우리에 대한 신뢰를 창출하기보다는 망가뜨렸다”고도 말했다.
메타의 팩트체킹은 AP통신, ABC뉴스, 독립적인 사실확인 기관 등에 의뢰해 미국 내 플랫폼에서 가짜뉴스를 판별한 뒤 삭제하거나 주석을 다는 기능이다. 전 세계 60개 이상의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메타는 이를 트럼프 1기 출범 직전인 2016년 12월 도입한 뒤 8년간 수십억 달러와 수천 명의 인력을 투자해 왔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와 달리 엑스의 커뮤니티 노트는 엑스에 게시된 콘텐츠에 사용자들이 직접 의견을 달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저커버그 CEO는 “이번 방침으로 나쁜 게시물이 덜 규제받겠지만, 실수로 삭제한 무고한 게시물과 계정의 수도 줄어드는 ‘상쇄(trade-off)’가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메타는 지난달 삭제된 콘텐츠는 전체의 1% 미만이지만, 10개 중 1~2개는 실제 정책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잘못 삭제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메타의 조엘 카플란 글로벌 정책 책임자도 미 폭스뉴스에 출연해 기존 팩트체킹이 “이민이나 성소수자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의를 너무 제한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저커버그 CEO는 “미국 기업을 겨냥하고 더 많은 검열을 추진하는 전 세계 정부에 맞서기 위해 트럼프 당선인과 협력하겠다”며 “지난해 11월 미 대선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적 전환점처럼 느껴졌다”라고도 강조했다. 메타의 콘텐츠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인 신뢰·안전팀을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대표적 보수성향 주(州)인 텍사스 등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앙숙’ 트럼프 취임 앞두고 180도 태세 전환
트럼프 당선인과 오랫동안 앙숙이었던 저커버그 CEO의 이날 발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우파에게만 과도한 검열 기준을 들이댄다고 비판해 온 트럼프 당선인 진영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2020년 대선 당시 메타는 선거 불복 운동 슬로건이었던 “도둑질을 멈춰라”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고,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 트럼프 당선인의 계정을 차단해 트럼프 지지층의 반발을 샀다. 트럼프는 대선을 앞둔 지난해 “메타가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 저커버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선을 계기로 트럼프 당선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며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번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 원)를 기부했고, 최근엔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인 데이나 화이트 이종격투기(UFC) CEO를 메타의 이사로 임명했다. 이날 발표한 방침을 주도한 카플란도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신으로 트럼프 당선인 측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메타의 이번 발표와 관련, 폭스뉴스 디지털에 “훌륭한 발표였다”라며 “메타가 먼 길을 왔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X의 린다 야카리노 CEO도 “커뮤니티 노트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성공적인 모델”이라며 다른 플랫폼들도 이를 따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설을 통해 “기업들이 민주당 좌파에 대한 복종을 재고하고 있다”라며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보낸 ‘진보적 제국주의를 멈춰라’라는 메시지에 응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디어업계 “증오-음모론-허위 정보 오물통 될 것”
하지만 약 1년 전까지 메타의 팩트체킹에 동참했던 AP통신은 “미디어업계와 가짜뉴스 전문가들은 경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스리터러시프로젝트의 댄 에번 수석 편집자는 “팩트체킹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인식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처사”라고 우려했다.
미 CNN방송은 “저커버그의 ‘마가(MAGA) 개편’은 인터넷 전체를 재편할 것”이라며 “메타의 플랫폼들이 온라인 오물통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온라인 감시기구 어카운터블 테크의 니콜 길 창립자는 미 뉴욕타임스(NYT)에 “1.6 사태를 야기한 증오, 허위 정보, 음모론의 수문을 다시 여는 방침”이라고 비판했다.
정치학자인 다트머스대 브렌던 니한 교수는 메타의 변화에 대해 “힘 있는 자들이 대통령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하며 굴복하는 패턴”이라며 “그동안 미국의 경제는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기에 전 세계의 기업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여기에 의문이 제기되면 미국에 심각한 위험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간 페이스북이 구글과 함께 전 세계 팩트체킹 단체와 매체들의 주요 자금원이었던 만큼 이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NYT에 따르면 대표적 팩트체커 중 하나인 폴리티팩트는 자사 수익의 5% 이상을 메타와의 파트너십에서 얻었다. 2019년부터 메타의 팩트체킹을 담당해 온 리드스토리즈의 앨런 듀크 편집장은 “발표 당일 아침 받은 이메일에 3월 1일경 계약이 종료될 것이라고 통보돼 있었다”라며 “불과 2주 전에 메타와 1년짜리 계약을 맺었는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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