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트럼프 스톰’이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게 동맹국들을 강타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 멕시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핵심 동맹과 우방국들을 겨냥해 그간 강조해온 경제적 패권은 물론이고 ‘불가침 영역’으로 간주되는 영토와 주권에 대한 침해 가능성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 등 다양한 주권 침해 발언을 이어가며 트럼프 2기 ‘미국 우선주의’의 근간에 ‘팽창주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 측은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전날 트럼프 당선인이 기자회견에서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바꾸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는데 마약 카르텔 소탕을 명분으로 군사 활동까지 검토 중이란 것을 시사해 주권 침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또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에 대해 소유 의사를 밝힌 데서 더 나아가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런 행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는 팽창주의로 볼 수 있다”며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을 병합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식민주의와도 닮았다”고 했다. 공화당 일각에선 과거 ‘먼로 독트린’을 빗대 ‘돈로(도널드와 먼로를 합친 말) 독트린’이란 평가도 내놓았다.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는 1823년 먼로 독트린을 통해 유럽에 대한 간섭을 거부하며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패권을 추구했다.
1기 때보다 더 거칠어진 트럼프 스톰이 세계 안보 질서에 긴장과 불확실성을 더할 거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치적 혼란 속에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는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누구도 예외없다… 트럼프 패권 확대 ‘돈로 독트린’ 새 리스크로
中견제 위해 파나마-덴마크 압박 ‘외교 개점휴업’ 韓 타깃될 가능성 정부 “조선-원전 중심 협력 최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눈독 들이며 노골화하고 있는 이른바 ‘돈로(Donroe·도널드 트럼프와 제임스 먼로의 합성어) 독트린’이 한국에도 새로운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돈로 독트린은 아메리카 대륙의 지역 패권을 선언한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먼로 독트린’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트럼프 당선인의 이름 ‘도널드’의 합성어. 단순한 고립주의를 넘어 미국의 이권을 위해 동맹국에 대한 영토와 주권 침해도 마다하지 않는 ‘트럼프식 팽창주의’로 해석된다.
특히 리더십 공백으로 인해 외교적 ‘개점 휴업’ 상태인 한국 정부에는 더 노골화된 트럼프 당선인의 외교정책 대응이 버거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운신의 폭이 좁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라도 미국의 중국 견제 기조에 대한 보조를 맞추되 “조선이나 원자력발전 등 한미 협력 분야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정지 작업은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 “韓, 중국과의 관계 설정 미리 대비해야”
트럼프 당선인은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군대 투입도 배제하지 않겠다면서 고립주의 기조였던 집권 1기와는 달라진 2라운드를 예고했다. 미국에선 ‘돈로 독트린’의 핵심은 중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중국이 미국을 피해 곳곳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데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압박 수단”이라며 “파나마를 향해선 ‘중국의 투자를 그만 받아라’, 그린란드는 덴마크를 향해 ‘중국이 북극해로 확장시키지 못하도록 확실히 견제하라’고 압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도 “아직 팽창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하긴 이를 수 있다”라면서도 “미중 패권 경쟁에서 파나마와 그린란드를 대리전 지대로 인식하고 전략적 쟁취를 꾀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외교당국과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러한 트럼프식 전방위적 대중국 견제 기조를 잘 읽어내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 이슈가 핵심이었던 트럼프 1기 때와는 달리 단순히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거래적 접근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중국 대응과 통상 불균형 재조정이 최우선 과제인 한국은 언제든 타깃이 될 위험이 높다는 것.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에 하듯 우리에게 52번째 속주가 되겠냐고 하진 않더라도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똑바로 하라는 압박이 다양한 형태로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령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높이라는 요구 외에도 대만 문제에 있어 주한미군이나 한국 정부의 역할을 더 확대하라는 식의 주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의 이익 추구가 트럼프식 ‘말폭탄’을 통해 본격화한 것”이라며 “우리도 중국 견제로 압박을 할 여지가 있으니 한미, 한중 관계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조선, 원전 등 협력 과제 우선순위 정리부터”
열흘 앞으로 다가온 트럼프 2기 취임에 대비해 정부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매주 월요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갖고 각 부처가 재외 공관, 기업 등을 통해 파악한 동향들을 공유하고 시나리오별 대응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일단 한미 간의 조선과 원전 협력을 필두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한미 조선협력 패키지도 마련하기로 했다. 안보부처 관계자는 “곧 전 세계적으로 원전 시장이 활짝 열리는데 미국은 원전 시공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미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잘 닦아 함께 진출할 수 있도록 사전 정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키맨들과의 접촉면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국내 정국의 불확실성과 미 행정부 인사들의 높은 보안 장벽으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분위기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을 움직일 핵심 인물을 새로 뚫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리더십 공백과 정치적 리스크가 해결되기 전까진 트럼프 측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결국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한미 간 협력 과제들을 추리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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