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 美상무장관 후보와 밴스 부통령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후보자(오른쪽)가 29일(현지 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열린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J D 밴스 부통령의 격려를 받으며 웃고 있다. 러트닉 후보자는 이날 한국산 세탁기 등 가전제품, 일본산 철강 등에도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은 전 세계 무역 환경에서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상무부 수장으로 발탁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29일(현지 시간)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관세’ 관련 질의가 나올 때마다 시종일관 미국 경제를 위해 관세 부과가 불가피하다는 소신을 강경한 어조로 밝혔다. 관세라는 무기를 전방위로 적용해 전 세계와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하고 미국 경제를 살려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법(Chips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미국 투자를 늘리는 반도체 및 자동차 기업에 지급하기로 했던 보조금의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혜택을 받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 현지 투자에 적극 나섰던 국내 기업에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미국 이용하는 무례함 끝내야”
러트닉 후보자는 이날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후 세계를 재건하기 위한 미국의 친절함과 고마움을 (다른 국가가) 이용하고 있다”며 “그 무례함을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자국산 경쟁 상품에는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을 나쁘게 대우한다”고도 했다.
특히 그는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불법 이민 및 마약 반입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타깃이 된 멕시코, 캐나다는 물론이고 한국, 일본 등 동맹국 또한 ‘관세 폭풍’의 사정권에 있다며 한국산 가전, 일본산 철강을 거론했다.
또한 그는 ‘보편 관세’ 등 관세 부과 시점에 대해서는 “행정명령에 적시된 대로 올 4월”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20일 상무부 등에 “미국 기업에 불균형하게 과세하는 국가에 대한 ‘보복 조치’를 검토해 4월 1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선별(targeted)’ 관세와 ‘일괄(across the board)’ 관세 중 어떤 유형을 선호하느냐”는 질의에는 “일괄 관세”라고 답했다. 수입 비중이 높은 제품에 먼저 관세를 부과하고 비중이 낮은 제품의 관세는 유예하는 선별 관세보다 일괄 관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트닉 후보자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다음 달 1일부터 각각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캐럴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도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와 중국에 대한 10% 관세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러트닉 후보자는 일부 의원이 ‘관세 부과 시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미 소비자가 인플레이션 위험에 처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모든 제품의 가격이 다 오르는 것은 아니다.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관세 부과 의지를 또 한 번 강조했다. 그는 27일 열린 공화당 연방하원 콘퍼런스에서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점을 거론했다. 그는 “(당시) 한국산 세탁기, 건조기 등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면 오하이오주에 있는 미국 가전회사가 다 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이 세탁기 등을 덤핑하려고 해서 관세를 50%에서 75%, 100%까지 올렸다”고 말했다.
● “보조금 계약 이행, 단언 못 해”
러트닉 후보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기업들에 주기로 한 반도체법 등에 따른 보조금 계약을 이행하겠느냐’는 질의에 “단언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내가 그 이행을 약속하려면 계약들을 읽고 분석해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는 리스용 전기차의 세액공제 관련 질의에도 “그것을 끝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해 대선 때부터 IRA의 폐지를 거론해 왔다.
국내 산업계는 술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법에 따라 지난해 12월 20일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47억4500만 달러(약 6조8500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받는 계약을 최종 확정했다. 삼성은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으며 내년부터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전체 투자 규모의 12.8%에 이르는 미 정부 보조금 지급이 트럼프 행정부 방침에 이어 러트닉 후보자의 발언 등으로 불확실성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4억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한 SK하이닉스 또한 러트닉 후보자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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