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 당일부터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추방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불법 체류 중인 한국인이 처음 체포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미주 한인 사회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같은 달 28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소지한 것 등의 혐의로 유죄를 받은 한국 시민을 체포했다”며 “ICE가 미 전역에서 불법 체류 범죄자를 계속 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체포된 한국 국적자 임모 씨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징역 5년 및 보호관찰 20년형을 받았다. 다만 임 씨가 언제 어느 곳에서 징역형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어떤 경위로 체포됐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범죄 경력이 있는 불법 이민자를 우선적으로 단속하되, 단속 과정에서 범죄 경력이 없는 불법 입국자까지 발견한다면 이들 또한 즉시 체포해 추방하기로 했다.
미주한인위원회(CKA)등 한인 관련 단체에 따르면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약 1100만 명 중 한국계는 약 15만 명(약 1.4%)으로 추정된다. 어릴 적 합법적으로 입양됐지만 양부모가 국적 신청 등의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 불법 체류자가 된 한인 입양인 또한 약 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과 없어도 언제 추방될지 몰라”… 美 불법체류 한인 15만명 ‘공포’
“매일 불법 이민자 단속 소식을 듣는다. 언제 추방 대상이 될 지 몰라 불안하다.”
10년 전 미국에 유학생 비자로 입국했지만 학교 졸업 후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취득하지 못한 뉴욕 거주 한국인 A 씨가 1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난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후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불법 이민자 단속 및 추방으로 자신을 포함해 약 15만 명으로 추정되는 한국계 불법 이민자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달 28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불법 체류 중이던 한국인 임모 씨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체포되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임 씨는 과거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징역 5년 및 보호관찰 20년형을 받은 중범죄자다.
초강경 반(反)이민 정책을 공언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범죄 전과가 없어도 합법적으로 체류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발각 시 곧바로 추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서류 미비자들(소위 불법 체류자), 적절한 서류를 갖고 영주권을 신청 중인 사람들, 영주권 취득을 위해 비자 변경 중에 있는 사람들 모두 불안해 한다”며 “시민권자라도 경범죄 기록이 있는 사람들도 백인이 아니면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美 한인사회, 극도의 불안감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법 관련 자문을 하고 있는 천관우 변호사도 1일 통화에서 “미 이민당국이 과거에는 중범죄자 출신 불법 이민자의 체포 및 추방에 주력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경범죄자도 구금되면 곧바로 추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한인이 많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이민 당국이 교회, 학교, 자선단체 등 그간 불법 이민자를 거의 단속하지 않았던 곳에서도 적극적인 단속을 실시한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일부 미국내 한인 교회에서는 교인들의 발길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천 변호사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주 등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남부 지역으로 가면 언제 검문을 받을 지 모른다”며 “이민 관련 문제로 상담해 오는 사람들에게 해당 지역으로의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 한국계 불법 체류자는 무작정 국경을 넘어 불법으로 미국 땅에 들어온 중남미계와는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은 입국 때는 유학 및 관광 비자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들어왔지만 이후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얻지 못한 채 미국 생활을 계속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세금도 내고 있다. 미 국세청(IRS)은 시민권 및 영주권이 없는 불법 체류자에게도 ‘납세자 번호(ITIN)제도’를 통해 세금을 걷고 있다. 미 조세경제정책연구소(ITEP)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내 1100만 명의 불법 체류자들이 연방 및 지방정부에 납부한 세금은 총 967억 달러다. 1인당 8889달러(약 1300만 원)을 낸 것이다.
● 다카 수혜자도 불안감 급증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도입한 ‘불법 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다카)’로 체류자격을 얻은 이민 1.5세대 한인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카는 불법 입국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오는 바람에 불법 체류자가 된 청년들이 걱정 없이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명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도 다카를 폐지하려 했지만 2020년 6월 연방대법원은 이 같은 조치를 무효화했다. 다만 연방대법원은 폐지 자체를 위헌으로 판결하진 않았다. 대신 폐지에 필요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최근 공화당 우세 주(州)에서 ‘다카 폐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데다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이어서 트럼프 2기 때 다카가 폐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존 수혜자에 대한 보호 조치는 일부 유지될 수 있어도 신규 수혜자는 앞으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연방이민국(USCIS) 통계에 따르면 2023년 3월 말 기준 약 57만 명의 다카 수혜자 중 한국계는 5000명 이상이다.
한편 한인·아시아계 이민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은 최근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민자들을 상대로 ‘알아야 할 권리(Know Your Rights)’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체포 영장을 보유하지 않은 단속 요원과 마주했다면 이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행동 요령 등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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