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가셨어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22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손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YS는 2008년부터 뇌중풍(뇌졸중)과 혈관 질환 등으로 투병해 왔다. 최근까지 간단한 의사…
서울대학교 병원 오병희 원장은 22일 오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사망원인에 대해 브리핑했다. 오 원장은 “이날 0시 22분 김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했다”며 “현재로서 사망에 이른 직접적인 원인은 허약한 전신…
김대중(DJ)-김영삼(YS) 라이벌 약사(略史) 1968년 DJ-YS 신한민주당 원내총무 경선(YS 승리) 1971년 DJ-YS 신한민주당 대선후보 경선(DJ 승리) 1988년 총선(DJ 평화민주당 승리) 1990년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 3당 합당(DJ 소외) 1992년 대선…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김대중(DJ) 김영삼(YS) 전 대통령 만큼 동지와 정적(政敵) 관계를 넘나든 사람도 드물다. 두 사람은 40여년의 정치인생 동안 민주화 투쟁이라는 한 배를 탔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항상 ‘물과 기름’의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이 직접 대결을 벌인 것…
거산 김영삼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강력한 친화력의 소유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지인들의 손목에 시계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시계를 벗어 채워주는 식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YS에 대해 “저항할 수 없는 친화력으로 좌중을 압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Y…
22일 오전 서거한 거산(巨山) 김영삼(YS)은 평생을 거침없이 살았다. 그가 즐겨 쓴 대도무문(大道無門·큰 길에는 문이 없다)이란 휘호처럼. ‘김영삼’을 빼고는 한국 현대정치사를 논할 수 없다. 27살이던 1954년 3대 총선에서 국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9선 의원을 거쳐 1…
<김영삼 전 대통령 연보> △1927년 12월 20일 출생 △1951년 3월 손명순 여사와 결혼 △1951년 9월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54년 5월 제3대 민의원 최연소 당선, 제3·5·6·7·8·9·10·13·14대 국회의원(9선) △1965년 민중당 원내총무, 이후 제1야당 …
‘혁명가’ ‘자식을 못 이긴 아버지’ ‘국가적 경제위기의 아버지’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YS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많은 일들을 이뤄내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첫 문민대통령이라는 찬사와 자식단속에 실패하고 외환위기를 부른 …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9일 고열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지병인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이 겹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