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 해는 유독 ‘말의 경상수지’가 엄청난 폭으로 흑자를 낸 한 해였다. ‘희망’의 말이라는 품목 하나만 결산해 봐도, 내 귀로 들어온 것보다 내 입으로 나간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입량보다 수출량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착한 말, 아름다운 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흑…
‘우리가 남이가’라며 안으로 굽은 팔 아래 봐주고 대주고 몰아주고 밀어주다가, ‘쟤들이 남이여’라며 내리친 주먹 아래 뺏고 끊고 잘라내고 밀어내다가, 뭔가가 꼬인다. 꼬인 몸통이 드러날 즈음 누군가 죽는다. 죽은 자가 꼬리다. 몸통은 이제 다른 꼬리를 만들 것이다. 특정의 정치적 …
학교나 군대, 회사 등 여러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조직에서 빚어지는 많은 갈등의 원인이 바로 ‘말’이다. 최근에는 상사나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 간의 막말과 폭언이 직장 내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이나 서울시립교향악단…
2011년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별내중의 이경복 국어교사(53)는 학생 중 25명을 뽑아 교실에 모았다. 영문을 모른 채 모인 아이들은 이 교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들과 나는 ‘아띠’ 동아리란다.” “아띠가 뭐예요, 선생님?” …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훔볼트대학 맞은편, 국립오페라극장과 과거 대학도서관 건물 사이에 광장이 하나 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 광장을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것은, 광장 한복판의 유리 바닥 아래로 들여다보이는 지하 공간이다. 수천 권의 책이 들어…
이처럼 지지와 공감의 작은 표시가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자살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징후를 보인다. 연령대별 특징도 있다. 10, 20대는 부모에게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을 하거…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 전 10년 동안 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내가 TV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침 보충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야 했고, 저녁 보충을 끝낸 뒤 종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었다. 제대로 본 드…
내 중학 시절에 관해 써보고자 한다. 3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새로운 과목이 생겼다. 상업이다. 1년간 나를 비롯한 3학년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상업을 공부해야 했다. 상업 교과서는 온통 숫자투성이였다. 낯선 단어들이 즐비했다. 이를테면, 자산, 부채, 어음 같은 용어들이다.…
선친의 고향은 평양이다. 광복 후 17세 때 대학 진학을 위해 혈혈단신 서울에 오셨다가 6·25전쟁으로 가족들과 영원히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객지생활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다행히 정부에서 미국 연수를 보내주어 귀국 후 한때 육군군수학교에서 재무관리 분야의 …
남자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일하고 있다. 폭행, 금품 갈취, 무단결석 등으로 속을 썩이던 제자가 있었다. 그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늦게까지 일을 해서 방치된 상태로, 어린아이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충분한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며 컸다. 아…
나의 20대는 힘들었다. 10대에 온다는 질풍노도기가 20대에 온 것처럼 힘들었다. 지방에서 온 청년에게 서울은 녹록지 않았다. 거리에 돌멩이가 난무하고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시절, 뭐하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없었다. 금빛 꿈을 안고 온 스무 살 젊음에게 서울은 너무 살벌하고 쓸쓸…
2003년 국내 최초로 빅탑씨어터에서 뮤지컬 ‘캣츠’의 막을 올렸다. 경기 수원에서의 성공적인 트라이아웃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텐트 안에 완벽한 냉난방 시설과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 등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지난 20년 치의 강우량과 풍속, 기온, 습도 등 기상 데이터를 …
그를 만나고 와 그를, 그 만남을 생각하니 아주 오래된 일인 것도 같고,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와의 만남은 ‘친견(親見)’이란 이름으로 무거웠지만, 나는 그를 아주 가까이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그토록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바로 그를 만나기 위한 것…
경기 여주시 남여주골프클럽(GC)은 9일 한글날 내장객에게 조그만 소책자를 나눠줄 예정이다. 이 책자에는 남여주GC의 3개 코스와 27개 홀에 붙인 순 우리말 이름 및 그 뜻을 담았다. 남여주GC는 올 5월 이 이름들을 짓고 각 코스와 홀마다 팻말을 세웠다. 3개 코스는 마루(정상…
외교부가 상대국 국가 이름이나 도시명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엉터리로 적고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만 검색해도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데도 잘못된 이름을 관행적으로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나라 이름이 틀린 대표 사례는 지중해 연안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