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는 자주 ‘세트’로 묶였다. 이상하게 그랬다. 이천 년대가 시작되고 엇비슷한 시기에 등단을 해서인지 어쩐지, 하여간에 세트로 거론된 것이다. 간혹 함께할 자리가 있다 해도 그녀 옆에 앉기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뭐랄까, 사석에서도 굳이 김혜자 씨의 곁에
1990년대 중반에 국내에서 가장 유행하던 컴퓨터 게임은 테트리스였다. 당시 KAIST 학생 연구실에 가보면 많은 학생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머리를 가까이 대고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가가 보면 십중팔구 테트리스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때 대학원생 김정주는 여느 학생
이수만은 유난히 눈이 작다. 웃으면 그의 눈은 더욱 작아진다. 그런 그가 무슨 수로 세계시장을 향해 눈을 그렇게나 크게 부릅뜰 수 있었을까. ‘깻잎머리를 한 채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유난히 까만 얼굴의 가수.’ 내가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 ‘가수 이수만’에 대해
미란이 누나와 내가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건 2004년 아테네 대회 때다. 그러니까 7월 개막하는 런던 올림픽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누나와 함께 참가하는 세 번째 올림픽이 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누나와 내가 금메달을 함께 딴 게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김정한 교수는 1997년 미국 수학학회지에 풀커슨 상 수상 소식과 해당 업적을 알리는 지면과 사진을 통해 처음 만났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미국 벨연구소 재직 중 이산수학(離散數學)에서 60년간 최대의 난제로 꼽혔던 ‘램지 수에 대한 예상’을 해결해 세계 수리프로그램
《 ‘명사가 쓰는 100인 이야기’를 6회에 걸쳐 싣습니다. 올해 선정된 ‘10년 후 한국을 빛낼 100인’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스승과 선후배 동료 등의 유명 인사가 공개합니다. 개인적 인연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와 독자 여러분이 참고할 만한 시사점도 제시합
데니스 홍 미국 버지니아텍 기계공학과 교수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가 컬러TV를 처음으로 사왔다. 어떤 기계든 분해하기를 즐겼던 그는 이 진기한 전자기기를 그냥 두지 않았다. 다음 날 비싼 컬러TV는 단박에 고장이 났지만 부모는 그를 혼내지 않았다. 홍 교수의 부모는 정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사람들’(소설가 김애란 씨), ‘만나고 있는 모든 분들’(김선권 카페베네 대표이사), ‘노력과 도전의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김수봉 서울대 교수)….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들은 유독 ‘주변의 보통 사람들’을 본받고 싶
처음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 무렵의 집 앞 바닷가가 떠오른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모래사장을 골프장 벙커로 생각하며 벙커샷을 연습했다. 학교 가기 전까지 하는 연습의 마무리는 아버지와 함께 해변을 5km 뛰는 거였다. 내 방 벽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이라는 종이
‘어릴 적 부산 해운대 해변에서 바라본 깜깜한 하늘, 반짝이는 은하수, 검게 출렁이는 바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중성미자(neutrino)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김수봉 서울대 교수(52)를 물리천문학의 세계로 인도한 순간이다. 김 교수는 “이때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은 미래 한국의 청사진이자 희망이다. 100인이 지금 구상하는 10년 뒤 한국은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100인이 바로 한국의 미래를 일궈나갈 주역이기 때문이다. 100인은 10년 뒤 한국이 세계 주요 10개국(G10)으로 발돋움할 …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대비되는 견해를 가진 신문을 비교해 읽은 뒤 하루를 시작한다. 나 자신의 가치관 때문에 사실을 판단할 때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성격이 다른 책 몇 권을 여기저기 놓아두고 동시에 읽어나간다. 지적이나 도덕적으로 오만이나
1987년경 어느 날, 석사 1학기 조민행 대학원생(47·현 고려대 화학과 교수)이 아이디어를 들고 지도교수를 찾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서정헌 교수(64·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말했다. “연구에 들어가면 박사과정 학생 서너 명은 너끈히 졸업시킬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야.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들도 땅이 꺼지는 듯한 좌절의 순간이 있다.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면 아무리 의지가 굳더라도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100인들은 그럴 때마다 가족에게서 위안 받고 스스로를 믿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데니스 홍 미국 버지니아텍 기
10년 뒤에도 현대의 판소리 작품을 몇 개 더 만들어내고 더불어 판소리를 창작하는 방법을 이론화하고 있기를 바란다. 또 여전히 ‘좋은 연희자’이고 싶다. 그때의 한국은 많은 사람이 먹고사는 데 어렵지 않은 모습이었으면 한다. 세상에는 닮고 싶은 사람이 너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