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가운데 있는 남산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 고래처럼, 마천루의 숲을 헤집고 솟아오른 거대한 초록빛 생명체 같다. 그 숨결은 서울의 대기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잔잔하게 퍼져간다. 남산이 있어 서울은 더욱 서울스럽다. 그야말로 자연이 선물한 축복이 아
경북 영주 부석사는 국내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특히 사찰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러보았을 유명한 고찰이다. 상당수 답사기나 여행기의 목차 한쪽에는 부석사가 빠지지 않고 들어 있다. ‘부석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면 사실 나도 선뜻 대답할
팔십 살 먹은 커다란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게 됐다. 나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건축가 우경국(예공아트스페이스 대표)은 모두가 예상하는 ‘당연한 답’을 무시해버렸다. 그는 건물과 나무의 공존을 택했다.○ 상수리나무를 보
비자나무는 바늘잎나무(침엽수)이지만 특이하게도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남부지방과 제주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제주에는 단일 수종의 숲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비자림이 있다. 사계절 내내 초록빛 피톤치드를 한가득 쏟아내는 이 소중한
2003년, 인천 연안부두 입구에 있던 ‘인천개항100주년기념탑’이 철거됐다. 인천 개항 100주년인 1983년 세워진 이 탑은 높이 33m, 길이 9m의 거대한 석조물이었다. 선박과 문(門)을 형상화했으며 인천항이 근대의 관문 구실을 한 것을 상징했다. 인천시는 기념탑의 철거 이
아무것도 써지지않는 날이 있다. 책상에 몇시간을 앉아 있어도 한 줄 써지지않는 그런 날에는 스케치북 달랑 넣어 배낭을 꾸린다. 거창하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책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지하철역까지 걸으며 생각한다. 어디로 갈까? 잠깐 고민하다 지하철 1호선에 정
인왕산 선바위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지하철 독립문역에서 내려 고층 아파트 옆 가파른 경사의 축대길을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가면 일주문(一柱門)이 보이고, 이내 수없이 많은 절집들을 만나게 된다.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인왕산과 국사당, 선바위의 기운
모든 따뜻함은 외로움 속에 있는지 모른다. 외로움이 없다면 따뜻함도 없고, 따뜻함이 없다면 외로움도 없다. 그래서 모든 섬은 외롭지만 외롭기 때문에 동시에 따뜻한 게 아닐까.-‘모든 섬은 따뜻하다’, 이승훈○ 왕실에 소나무 공급하던 섬섬을 향해 가는 정기선 위에서
사냥을 하던 이성계는 몹시 목이 말랐다. 때마침 발견한 우물 하나.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마침 웬 여인이 있어 물을 달라 청했다. 여인은 바가지에 물을 담은 후 버들잎 하나를 띄워 건넸다. 의아해진 이성계가 그 연유를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갈증에 급하게 냉수를 드
“정말 그 산이 예전에 이랬단 말인가요?”이것이 과연 방금 전 본 그 산인가 싶었다. 박성열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장이 사진을 다시 보여줬다. 1970년대의 빛바랜 사진에는 허허벌판과 민둥산만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진한 황톳빛투성이였다. 그 모습에서 울창
내가 나무를 즐겨 그리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나무가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객(客)을 맞아 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나무의 그윽한 변화 때문이다. 나무는 진정 ‘느리게’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멋진
《 나는 걸으면서 가장 풍요로운 생각을 얻게 되었다. - 키르케고르(덴마크의 철학자) 》 아침 안개가 낮게 깔린 조용한 숲을 걷는다. 원시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제주 중산간 숲 속. 숲을 걸으면 항상 따르는 그 고요가 나는 좋다. 녀석은 내 옆에서 나란히 걷는다. 무수한
경희궁(慶熙宮)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입장료도 없는 그곳에는 관람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담도 없이 홀로 서 있는 정문을 지나면 어느새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마당에 당도하게 된다.○ 광해군이 왕족 집 빼앗아
하얀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소소한 수채화 하나를 그릴 때도 창작의 기쁨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물며 드넓은 대지 위에 도시를 세우는 일은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송도국제도시는 그런 엄청난 계획과 시도가 만들어낸 신도
내가 마지막으로 반딧불이를 본 것이 언제였을까? 자려고 불을 끄자 창 근처에서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 몇 마리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잠이 잘 오지 않는지 아이가 벌떡 일어나 창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창에 코를 바짝 붙이고 앉아 벌레를 쳐다보았다. 반딧불이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