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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암전이 되었다가 무대 조명이 툭, 떨어지기 전의 짧은 틈에서. 관객들이 고양된 가슴을 안고 일어서 박수를 칠 때. 엔딩곡 마지막 음의 진동이 마침내 부드럽게 사라질 때. 모두가 떠난 후 텅 빈 로비에 노란 실내등만 남을 때. 거기에서 먼지가 불규칙하게 회전하는 것이 보일 때. 몇…
“나쁜 놈을 죽일 땐 바보가 돼야 한다.” 미 해군 출신인 마흔네 살 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는 그 나름대로 지켜온 신념이 있다. 그간 17번의 암살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그는 언제나 ‘죽여도 되는’ 명분을 찾았다. 대상의 직업이나 나이 등은 다양했지만 모두 똑같은 이유가 …
다부진 체격에 힘이 센 친구들이 모인 ‘청팀’과 다소 마르고 왜소한 친구들이 뭉친 ‘홍팀’. 양 팀이 줄다리기에 나선다. 한판 붙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예측이 쏟아진다. “힘센 애들은 다 청팀이야.” 하지만 승부는 겨뤄봐야 아는 법. 위축돼 있던 홍팀을 향해 군중 속 누군가가 외친…
에두를 필요 없다. 사회학이라… 교과서도 아니고. 제목만 봐선 흠칫 움츠러든다. 반면 그래도 게임이라니 살짝 안심. 표지에 보기만 해도 신나는 컨트롤러도 떡하니 실려 있고. 과연 이 책, 딱딱할까 말랑할까. 결론부터 말하자. 이 책, 무척 흥미로운 내용을 ‘있는 힘껏’ 건조하게 썼…
남태평양의 에콰도르령이자 화산섬 123개로 이뤄진 갈라파고스 군도. 1835년 찰스 다윈(1809∼1882)이 20대에 비글호를 타고 와 진화론의 단초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진화론자에게 갈라파고스를 간다는 건 ‘성지순례’와 다름없는 일.…
○ 30일의 밤(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이은주 옮김·푸른숲)=해외에서 공상과학(SF) 스릴러 소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의 2016년 작. 멀티 유니버스(다중우주)를 소재로 물리학 교수인 주인공이 다른 우주의 또 다른 자신에게 인생을 빼앗긴 뒤 이를 되찾으려 고군분투한다. 제니퍼 코…
영국 남부에 있는 사유지 ‘넵 캐슬’. 찰리 버렐과 이저벨라 트리는 2000년 2월 3500에이커(약 1416만3000m²)에 이르는 이 땅에서 운영해온 농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농장은 1987년 찰리가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때부터 만성 적자였다. 부부는 최신 농기계를 들여…
“파도의 크기는 두려움의 크기와 같아. 지금은 너무 벅차 보이는 일도 지나고 나면 훨씬 작게 느껴질 거야.”
출판 일을 하다 보면 저자와 동료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느낄 때가 많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는 행복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이들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진실한 우정을 나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마라.” 구약성서 창세기는 인류의 심층 의식에 과수원이 이미 낙원의 상징으로 자리 잡…
두 시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실에서 나온 나. 간병인에게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이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형은?”이라고 물어온다. 장남인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40년 전 잠시 집에 머물렀던 한 형을 떠올린다. 결국 …
“나쁜 놈을 죽일 땐 바보가 돼야 한다.” 미 해군 출신인 마흔네 살 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는 나름 지켜온 신념이 있다. 그간 17번의 암살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그는 언제나 ‘죽여도 되는’ 명분을 찾았다. 대상의 직업이나 나이 등은 다양했지만 언제나 똑같은 이유가 있었다.…
영국 남부에 있는 사유지 ‘넵 캐슬.’ 찰리 버렐과 이저벨라 트리는 2000년 2월 3500에이커(약 1416만3000㎡)에 이르는 이 땅에서 운영해온 농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농장은 1987년 찰리가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때부터 만성 적자였다. 부부는 최신 농기계를 들여 …
내 앞에는 한 할머니가 서 있었다. …(중략)… 나는 기차를 놓칠까 봐 겁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모두 기차에 탔다. 복도에서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어려워. 어휴, 너무 어렵다니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언니와 대화를 하는데 그 할…
서우는 뭐든 조금 느린 아이다. 친구들은 서우를 ‘북이’라고 부른다. ‘거북이’에서 따온 별명이다. 학교에서 반별 계주대회가 열렸다. 서우네 반은 내내 1등으로 달렸지만, 서우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면서 꼴찌로 결승선에 들어온다. 친구들은 화가 나 “우리 반이 이길 수 있었는데, 북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