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의 가치에 대한 논쟁의 역사는 민주정의 역사보다 더 길다. 기원전 521년, 페르시아의 수사에서 귀족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반란을 제압한 뒤 미래의 정체(政體)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오타네스는 군주제를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체라고 비판하면…
《1880년경부터 1894년 청일전쟁 발발까지 약 15년간은 조선에 기회의 시기였다.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아직 침략적이지 않았다. 아니, 조선을 침략할 만한 국력이 없었다.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고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게 능력의 한계치였다. 일본이 조선을 침…
《1591년 어느 화창한 봄날, 러시아 차르 표도르 1세의 배다른 동생인 여덟 살 드미트리가 우글리치 궁궐 정원에서 날카로운 물체에 목이 찔려 죽은 채 발견됐다. 모스크바에서 파견된 진상조사단은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항간에는 병약한 차르의 손위 처남이자 정권 실세인 보리…
《최근 김치의 종주권을 둘러싸고 한중 간 논란이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 김치가 뜬금없이 논쟁에 휘말렸다. 그러다 보니 김치가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기원 논쟁에 가려지긴 했지만 유라시아 역사 속에서도 김치는 오랜 흔적을 갖고 있다.》
《민주정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31년에 행한 연설에서 민주정을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손에서 운영되는 정체”라고 부르면서 자유와 평등을 이 정체의 기본가치로 내세웠다. “우리는 사생활에서 관대함을 갖고 교류하며 공적인 일에서 두려움을 갖고 …
《임진왜란 이후의 통신사 파견을 들어 당시 한일관계를 친선외교라고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파견 횟수를 보면 대략 20년 만에 한 번밖에 안 된다. 가뭄에 콩 나듯 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통신사는 에도(도쿄)까지 가지 않고 쓰시마에서 대충 ‘때웠다’(1811년). 에도까…
《1843년 10월 2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극장은 ‘세비야의 이발사’ 러시아 초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내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랑스의 유명한 프리마돈나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숨죽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못생겼네.” 기대와는 달리 여…
《6월은 우리의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생명을 바친 전사를 기념하는 시간이다. 자기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유라시아와 한국 역사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낡은 칼로 전사자를 추모하던 3000년 전 유목전사의 풍습은 한국 고인돌에서도 발견된다.》
《고대 아테네 민주정은 기원전 508년부터 100년 이상 안정 상태를 유지했다. 뛰어난 정치가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이들은 민주정의 기틀을 놓았고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막아냈으며 작은 도시국가를 문명의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그 100년 동안 정치제도뿐 아니라 기술, 예술, 학문 등 …
《전근대 시기 한중관계는 조공책봉체제하에 있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이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형식적인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정기적인 사절단 파견과, 중국을 상국으로 대접하는 외교 의례만 지키면 나머지는 거의 조선의 자유 의사가 존중되었다. 병자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멜리호보. 의사이자 작가인 안톤 체호프(1860∼1904)가 1892년부터 7년 반 동안 거주했던 곳이다. 여기서 그는 희곡 ‘갈매기’를 비롯한 여러 편의 대표작들을 집필했고 진료소를 열어 주민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마스크는 본래 가면 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감추는 다양한 장식을 통칭했다. 하지만 어느덧 마스크는 위생과 건강을 지키는 지금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됐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마스크, 그리고 의료용 마스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법무부’(the Ministry of Justice)와 ‘법무부 장관’(the Minister of Justice)에는 모두 ‘정의’가 들어간다. 법과 정의가 하나이고 합법적인 것이 정의롭다는 생각은 서양 사상의 오랜 유산이다. 고대 그리스의 법 관련 용어들에도 ‘정의’가 빠짐없이…
《근대일본은 초기부터 유난히 해외팽창욕을 보였다. 이미 도쿠가와 막부는 1855년 아이누인들이 살던 지금의 홋카이도를 직할령으로 삼았고 메이지 정부는 이어서 일본인을 대거 이주시켰다. 그 너머 북방에도 관심을 보여 1875년에는 러시아와 사할린-쿠릴열도 교환조약을 체결하고 쿠릴열도를 …
《모든 것은 헛소문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엽, 러시아 지방의 어느 작은 도시. 암행 검찰관이 조만간 들이닥칠 거라는 첩보에 시장을 비롯한 관리들은 혼비백산한다. 그동안 저질러온 온갖 비리가 백일천하에 드러날 판이다. 하필이면 이때 마을 여관에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는 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