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의 로비자금 대부분이 우리은행에서 받았거나, 이 은행의 지급보증으로 다른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금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리은행의 부실한 리스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우리은행은 이 전 대표가 2007년 말 중국투자회사 백익인베스트먼트를 만들어 중국 베이징 소재 화푸 오피스빌딩을 인수할 때 지급보증을 섰다. 이 전 대표는 우리은행의 지급보증 덕분에 국민은행 등에서 380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이 전 대표가 백익인베스트먼트에서 1650억 원을 인출해 홍콩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보내면서 말썽이 생기자 우리은행은 이 전 대표를 대신해 국민은행 등에 3800억 원을 갚은 뒤 아예 백익인베스트먼트 주식과 경영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이 전 대표가 화푸 오피스빌딩 지분을 정리한 뒤여서 백익인베스트먼트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회사였다. 3800억 원을 쏟아 부으면서 이 돈을 회수할 최소한의 장치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 이 사업에 관여한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회주의 국가여서 근저당을 설정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이 전 대표는 2004년 우리은행 부동산팀장 천모 씨와 천 씨의 후임인 정모 씨에게 각각 3억9000만 원, 3억8700만 원의 뇌물을 주고 1조4000억 원을 대출받는 데 성공했다. 이 돈 중 일부가 파이시티 로비의 종잣돈이 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의 부실한 리스크 관리가 은행 지배구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정부가 대주주여서 지주회사와 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정부의 입김에 따라 결정되고, 이러다 보니 대출 심사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에서 기업 여신 업무를 담당하다가 퇴직한 한 관계자는 “위에서 ‘알아보라’고 이야기하면 실무진은 어떻게든 대출이 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고 한다”며 “부동산 시행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어 우리은행과 자회사인 경남은행을 집중 공략한다”고 했다. 대출 심사가 시스템 대신 ‘외풍(外風)’에 영향을 받는 사례가 많다 보니 부실대출을 걸러내야 할 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고, 주인 없는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일부 직원의 모럴 해저드를 불러왔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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