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독도 영유권 내세우며 ‘다케시마의 날’ 만든 日시마네 현 르포
중학교부터 ‘다케시마’ 교육… 극우파 주장에 동화돼
어민들 “생존권 걸렸다” 민감… “반씩 나누면 어떠냐” 묻기도
11일 오후 7시 반 일본 시마네(島根) 현 마쓰에(松江) 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교바시(京橋) 하천 옆 공터. 일본인 20여 명이 모여 가족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기자는 이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40대 남성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고유의 영토’에 남의 나라 대통령이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영토 문제가 있으면 국제법으로 풀어야 하지 않느냐. 한국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에 경비대를 배치하고 대통령이 가는 것은 오히려 한국 영토라는 자신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다른 남성은 “임기 말에 떨어진 인기를 올리기 위한 것임을 한국 사람도 알고 있느냐”며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마쓰에 시는 시마네 현 현청 소재지다. 시마네 현은 2005년 갑자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다. 11, 12일 만난 마쓰에 시민들은 하나같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비판했다. 일본 극우 단체들이 독도 영유권 망언을 생산하는 전초기지로 시마네 현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극우 세력에 의해 증폭돼 일본 전역으로 퍼질 것으로 보인다.
마쓰에 역 근처에서 생선 요리를 만들어 파는 한 식당의 종업원은 기자가 한국인인 것을 감안해서인지 “‘다케시마’를 절반으로 나눠 반반씩 소유하면 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독도 인근 어장에서 조업을 원하는 어부들의 독도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하다. 마쓰에 시 북쪽에 있는, 승용차로 40분 거리의 에토모(惠曇) 항구. 상점을 운영하는 한 60대 남성은 “이 대통령이 가야 할 곳은 ‘다케시마’가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다. 어민들에게 ‘다케시마’ 조업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주장했다.
극우파가 아닌 일반인까지도 일제히 독도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4, 5년 전과 비교할 때 달라진 것이다.
마쓰에에선 2006년부터 매년 2월 ‘다케시마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지만 극우파 인사들이 벌인 ‘그들만의 잔치’였을 뿐이다. 마쓰에 시민들도 당시엔 한국 관광객이 줄어들 것을 걱정했다. 20대 전후 젊은층이 학교에서 다케시마 영유권 교육을 받고 강경한 주장을 펼치는 점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시내에서 만난 시마네대 3학년 학생은 “중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다케시마’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 분쟁 중인 영토에 한국의 최고통수권자가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마쓰에 역에서 만난 고등학생 두 명(여)도 “학교에서 유인물로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배웠다. 한국이 왜 엉터리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았고, 일본 당국의 역사 왜곡이 누적되면서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이 굳어진 셈이다. 일본 극우파의 거듭된 주장에 그동안 무관심했던 일반인마저 동화돼 전국적으로 왜곡된 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목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쓰에 시민들의 변화에는 학교 교육뿐 아니라 각종 홍보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마쓰에역 광장의 3m 높이의 홍보탑에는 ‘다케시마는 우리나라 고유영토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12일까지 마쓰에 극우단체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집회나 데모도 없었다. 11일 시작된 ‘오봉(お盆·추석에 해당하는 일본 명절)’ 연휴가 극우단체의 결집력을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우단체들이 마쓰에에 모여 독도 관련 망언을 외친다면 이번에는 일반인들의 동조도 꽤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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