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전격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나타낸 사실이 확인되면서 현 정부의 대일 전략이 ‘조용한 외교’에서 ‘강공’ 쪽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10일 독도행 헬기에서 동행했던 소설가 김주영 이문열 씨에게 “(외교적) 말썽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지만 이런 저런 눈치를 보면 독도에 영영 못 간다” “이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방문 후 동행자들과의 만찬에선 동동주를 연거푸 권하고 자신도 몇 잔 마시며 “개운하다” “늦게나마 할 일을 했다” “일본 정부가 너무 무성의했다” 등의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8·15 광복절을 맞아 독도에 세워질 ‘독도수호 표지석’에 대해서도 “방문 시점을 고민하다 표지석이 만들어진다고 해 계기로 삼았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 표지석엔 이 대통령의 휘호가 들어간다.
한일 과거사 문제 접근에 대한 이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는 당장 8·15 경축사를 통해서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경축사 대부분을 경제위기의 실체와 타개책을 설명하고 민관 합동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데 할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8·10 독도 방문’으로 경축사 일부를 일본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내용으로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독도 방문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인 만큼 다시 한 번 독도 방문 사실과 그 소회 및 의미를 국민에게 차분히 설명하는 내용이 추가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독도 방문의 결정적 배경 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 변화를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와 영토문제 전담 조직 신설 등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각종 조치에 대해선 ‘무대응’으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주말에 참모들과 회의를 하고 직접 경축사에 담을 내용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의 양대 키워드로 경제위기 대처와 독도를 꼽으면서 역대 경축사처럼 새로운 국정운영 어젠다를 내놓을 가능성은 낮아졌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한 방향에 치우친 신자유주의와 복지 국가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공생 발전’을 화두로 제시했다. 임기 첫해인 2008년에는 ‘녹색 성장’을 국정의 새 이슈로 제기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임기 중 마지막 8·15 경축사인 만큼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지금 닥친 현안을 정리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13일 강창희 국회의장, 이병석 박병석 국회부의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독도 방문 배경을 설명하고 남은 임기 중 주요 현안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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