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을 풀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을 분리해 대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영토인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단호한 기존의 태도를 유지하되,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서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는 셈이다.
20일 청와대와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신각수 주일 한국대사는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을 포함한 일본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이 대통령의 일왕 발언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한 워크숍에서 교사들과 일문일답을 하다 나온 원론적 발언”이라며 이해를 요청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 만큼 그 취지를 오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다 일왕 발언까지 겹치면서 일본 정부의 급격한 강경 대응 분위기를 몰고 왔다고 보고 있다. 일왕 발언이 일본 국민의 감정을 건드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일왕 발언이 일본의 과잉대응을 부추기는 빌미가 되지 않도록 각종 채널을 통한 일본 설득에 나선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굳이 ‘투 트랙’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일본이 일왕 발언에 필요 이상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해서는 맥락과 취지를 제대로 전달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1일 일본의 독도 관련 각료회의 결과를 지켜본 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서한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 대응 방향과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간 분쟁이 격화되는 상황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거친 반일 시위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을 통해 과격하게 반응하는 중국과의 외교전에 매달려 있는 동안 독도 문제와 관련된 한일 간 감정싸움은 상대적으로 빨리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다 총리가 17일 이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낸 지 사흘이 지나도록 정부가 대응 방향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정부 안팎에서 비판론이 나온다. 일본 측의 ‘총리 서한 발송’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는 반박 서한을 발송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면서도 서한 자체를 돌려보내거나 아예 무시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일관계의 급랭으로 정부가 추진하려던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사실상 이 대통령 임기 중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밀실 처리’를 시도하다 최종 추인을 보류한 한일 정보보호협정에 대해 “앞으로 기회를 봐서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8·15 광복절 경축사 직후에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독도나 과거사 문제와 한일 정보보호협정 추진은 별개의 사안이며 정상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공세로 한일관계가 하루가 달리 악화되면서 당분간 정보보호협정을 재추진할 계기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북 정보 취득을 위해서도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필요하지만 한일관계가 이렇게 얼어붙어 임기 중에는 논의를 재개할 엄두를 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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