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1일 독도 대응과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ICJ) 공동제소 공식 제안 외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유보한 것은 급박한 동아시아 정세를 감안해서라는 평가가 많다. 중국의 팽창과 북한의 핵실험에 공동 대응해야 할 우방국인 한국과 더이상의 확전은 ‘동반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중국과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상황도 전선 확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 유보
이날 노다 요시히코 총리 주재의 각료회의가 끝난 후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관심의 초점인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에 대해 “일절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일 정상 간의 셔틀외교 중지 여부에 대해서는 “한일 간 외교 루트를 당장 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서도 “오늘 논의된 게 없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군사 관련 조치에 대해서는 “독도 문제는 국제법에 따라 냉정하고 공정한 평화적 해결을 지향한다”며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다.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확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그렇다고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노다 총리는 “앞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해 속도감을 갖고 대응해 나가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대응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중일 3국은 21일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제2차 사전실무협의회를 열었다. 3국 대표들은 글로벌 경제 침체와 유로존의 채무위기 상황에서 상호 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 한국과의 외교 파탄은 ‘동반자살’ 우려
일본은 지난달 내놓은 올해 방위백서에서 “중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과 이해가 대립하는 문제에 고압적이며 앞으로 방향성도 불안하다”며 이례적인 강도와 분량으로 중국에 대한 경계감을 표출했다. 중국은 ‘도전장’으로 받아들이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하는 한국과의 갈등은 일본의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본 정관계와 언론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이 급격히 친(親)중국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마음을 졸였다. 한일 갈등에 엄정 중립을 표명해왔지만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적극 요청했다. 한일 갈등이 더 진행되면 한미일 동맹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제 보복조치가 일본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확전 경계의 한 요인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각료회의에 앞서 각 부처가 보고한 보복조치와 관련해 액화천연가스 공동조달 검토 작업 재검토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보복조치 중 상당수는 일본이 더 원했던 내용”이라며 “감정적인 조치는 양국 경제 모두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와 관련해 경제 보복을 시도하면 2010년 센카쿠 충돌 때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에 나서 비판을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도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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