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21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주재로 각료회의를 열고 한일 통화스와프(금융위기 때 통화교환) 규모 축소 등 독도 문제와 관련해 검토되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유보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자고 제안하는 방안은 확정해 외교통상부에 외교서한(구상서·口上書)을 전달했다. 구상서에는 “독도가 한일 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곳이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판단을 받아보자. 한국이 이 제안을 못 받아들인다면 1965년 한일협정상의 교환공문에 의거해 조정을 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즉각 거부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ICJ에 회부하자고 공식 제안한 것은 1954년과 1962년 이후 50년 만이다.
일본 정부의 이날 조치는 한국이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기점으로 차분한 대응으로 전환한 데 이은 것으로 일본도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와 관련해서도 도쿄(東京) 도의 센카쿠 상륙 신청을 불허키로 했다. 중국 역시 언론에 ‘사건을 순화해 보도하라’고 보도지침을 내리는 등 중-일 간 긴장수위도 완화되는 추세다.
노다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한국 측이 생각을 깊이 해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의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정정당당하게 제소에 응할 것을 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다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1965년 한일협정의 분쟁해결 교환각서에 따른 조정도 한국 정부에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이달 말로 예정됐던 한일 재무장관회의 등 한국과의 주요 장차관급 회의를 연기하는 방안도 결정됐다. 다음 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도 유보키로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 한국 국채 매입 계획 철회,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출 반대 등 실질적인 대항 조치는 꺼내지 않았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도를 ICJ에 회부하거나 조정을 하자는 일본 측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ICJ 제소 제안을 담은 일본 측의 외교서한에 대해 조만간 정부의 입장을 밝힌 서한을 보낼 예정이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우리 영토를 실효적 지배라고 쓰면 분쟁 지역처럼 보인다’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지적에 “더이상 실효적 지배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영토 수호, 영토권 행사로 쓰겠다”고 말했다. 외통위는 이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편 일본 제1야당인 자민당은 29일 참의원(상원)에 총리 문책결의안을 제출해 중의원(하원) 조기 해산을 압박할 방침이라고 일본 언론이 이날 보도했다. 문책결의안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야당이 법안 심의를 거부하게 돼 노다 총리의 국정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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