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항의하자… 아베 “각료는 위협에 굴하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동북아 외교 격랑]
■ 日총리 연일 ‘극우 폭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극우 민족주의적 발언이 이틀째 계속됐다. 그의 발언과 행동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베 총리는 2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각료와 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국가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참배를 정당화했다. “각료들에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말해 참배에 대한 한국 중국의 강력한 반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베 총리는 “한국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항의는 김대중(대통령) 시대에도 조금은 있었지만 노무현(대통령) 시대에 들어 현저해졌고, 중국도 이른바 A급 전범을 합사했을 때에는 항의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이 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23일 참의원 답변에서도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와 관련해 “‘침략’의 정의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말해 과거 침략 사실을 부정하는 듯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가 일시에 극우 성향을 드러내는 데 대해 아사히신문은 24일 ‘한국과 중국에 대한 불신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아베 총리는 이웃 국가를 배려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자제하고 춘계대제(21∼23일) 때 공물을 보냈음에도 한국 중국이 반발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신문은 “‘배려해도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다’는 것이 총리의 생각”이라고 총리 측근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중국에 대해서도 문제를 중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일본은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중국이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 경제에 집중한다는 ‘안전운행’ 기조를 공공연히 밝혔지만 참의원 선거 전에 이미 극우 민족주의라는 ‘아베 본색’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불신감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의 사고의 뿌리 깊은 곳엔 ‘일본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1월에 발간된 아베 총리의 저서 ‘새로운 나라로’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은 (패전 후) 60년간 국제 공헌에 노력해 오며 호전적인 자세를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국가 간에 문제만 생기면 과거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꾹 참아야 했다. 그 결과 걸핏하면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듯한 인상을 세계에 심어 줬다”고 밝혔다.

위안부 할머니들 “아베 각성하라”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밝힌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2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초등학생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제1071회 정기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위안부 할머니들 “아베 각성하라”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밝힌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2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초등학생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제1071회 정기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헌법 개정과 군사대국화에 대해서도 피해자 의식을 드러냈다. “(옛) 서독은 같은 패전국인데도 1955년 주권 회복과 동시에 국방군을 창설했고 통일까지 36차례나 헌법을 개정해 징병제를 채용하고 유사 사태에 대비한 법도 정비했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선 이웃 국가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저서에서 “A급 전범이란 말에 오해가 있다. 지도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A급이라고 편의적으로 불렀다. 죄의 경중과는 관계없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극우 본색을 드러내고 이에 동조하는 일본인이 늘어나면서 일본에 사는 교민들과 일본인들의 갈등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산하 재일한국청년회는 23일 도쿄(東京) 신오쿠보(新大久保) 등지에서 벌어지는 반한(反韓) 시위에 대해 “같은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더는 간과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포 사회가 한국에 대한 혐오 시위에 공식 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극우 본색을 앞으로도 최대한 억누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베 총리의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하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전 외무성 사무차관,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 다카사키(高崎)경제대 교수 등이 모두 한국 중국과 전략적 우호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의 대표적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일본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24일 사설 성격의 칼럼인 ‘종성(鐘聲)’에서 “일본이 뒤 책임을 생각지 않고 사단을 일으켜 멋대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일본의 국가적 이미지를 더욱 훼손할 뿐이며 더욱 무거운 부담을 질 뿐”이라고 비판했다.

관영 신화(新華)통신도 평론을 통해 “일본은 반드시 역사 문제에서의 잘못된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사설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국력이 쇠락해지는 일본이) 스스로를 속이고 마비시키는 독약과 같은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도쿄=박형준·베이징=이헌진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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